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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5일] 감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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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5일] 감나무집

입력
2013.02.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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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감나무집에서는 삼겹살과 막국수를 판다. 김옥희 여사의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김옥희.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이 애지중지하던 여동생. 1936년, 이상은 애인을 따라 몰래 만주로 떠난 스무 살의 맹랑한 옥희에게 편지를 썼다. 네가 이렇게 떠나다니, "망치로 골통을 얻어맞은 것처럼 어찔어찔"하다고. 우연히 감나무집을 알게 된 건 밥집을 찾아 동네를 돌던 오래전의 어느 날이었다. 열린 대문 안쪽으로 큼직한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뭐라뭐라 적힌 글귀와 함께 이상의 얼굴이 보였다. 글귀는 좀 길었지만 요컨대 가게주인이 시인 이상의 조카라는 내용. 그게 그냥 반가워,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가끔 감나무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곤 했다. 하지만 이제 감나무집에는 액자가 보이지 않는다. 김옥희 할머니는 안녕하시냐고 물었더니 치매를 좀 앓으시다 2008년에 아흔넷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액자가 내려진 것도 아마 그 무렵이었겠지 싶다. 뒤늦게나마 명복을 빌어본다. 내가 이 집에 다시 오기까지도 그새 6, 7년이 흘렀나보다. 감나무집을 내가 잊고 있던 기간이기도 하다. 여동생의 가출에 머리가 어찔어찔했던 천재시인. 천재시인의 머리를 어찔어찔하게 만들었던 그 여동생. 이들의 피붙이임을 자랑처럼 담고 있던 액자. 이제 이 세상에는 없는 것들. 그 다음으로 사라질 것은 감나무집에 대한 나의 기억일까.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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