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건배사는 대부분 언어축약형 삼행시로 돼 있다. '당나귀' '사우나' '나가자' '재건축' '오바마' '스마일'(스치면 웃고 마주치면 웃고 일부러라도 웃고), 이런 식이다. 삼행시를 넘어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나 '조통세평'(조국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처럼 네 글자로 된 것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왠지 어색하거나 언어의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원더걸스'만 해도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일 삼아 만든 건배사이긴 하지만 이 말이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소녀시대’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여러분, 시방 (잔) 대보세요”, 또는 “소중한 여러분, 시대의 대세는 소통입니다”라나 뭐라나? 소통 대신에 특정인이나 회사, 상품의 이름을 넣어 쓰기도 하지만 역시 어색하다.
그래서 그렇게 어색하고 품위 없는 삼행시 식 건배사를 읊어대지 말고 이야기가 있는 건배사를 분위기에 맞게 만들어 쓰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인생철학을 담은 말이 감동과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시골에서 서울에 와 온갖 고생 끝에 성공한 사람은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내세워 “인생은 직진이다!”라는 말을 애용한다. 그 사람이 “인생으은” 하고 외치면 “직진이다!”라고 받아주는 식이다.
이야기가 있는 건배사는 바로 그 이야기 때문에 길어질 수밖에 없다. 건배사 자체도 약간 길어질 수 있지만, 그 말을 외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일을 맞은 ○○○을 축하할 경우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우정은 더하고, 슬픔(미움)은 빼고, 사랑은 곱하고, 고통은 나누고…” 이렇게 하다가 “○○○은?” 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물론 우정부터 고통에 이르는 네 가지에 관한 부분은 “우정은?” 하고 물어 “더하고!”라고 대답하도록 미리 연습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한 뒤에 “○○○은? ○○○은 어떻게 할까요? ○○○은 키우고!” 그러면 사람들이 와 웃으며 재미있어 할 것이다.
진수테리(57)라는 여성이 있다. 스마일 마케팅으로 미국사회를 매료시킨 Fun경영의 달인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인과 결혼해 살면서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이다. 일은 잘하는데 얼굴에 미소가 없다는 이유로 첫 직장에서 해고당한 경험이 오늘의 그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원래 유머도 없고 얼굴도 못생긴 자신이 오늘날 세계적 명강사로 성장한 것을 보라며 다른 이들을 응원?격려하고 있다.
그가 외치는 말은 이것이다. “이프 진수 캔 두 잇, 유 캔 두 잇 투!(If Jinsoo can do it, you can do it, too!)” 진수가 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어! 그는 이 말을 춤추듯 독특한 손동작과 몸짓을 하면서 함께 외치도록 하는데, 이 말에 힘을 얻어 열심히 살아가게 된 사람이 많다. 이런 것도 건배사다. 꼭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것만이 건배사는 아니다. 건배사는 인간의 삶 전체에 해당되는 응원메시지다.
언어축약형 삼행시든 이야기가 있는 건배사든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유머와 감동,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모임이나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이 있지만 그 자리의 특정한 분위기에 취해 잘못 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망신만 당하기 쉽다.
건전하고 보편타당한 상식은 건배사를 지어낼 때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다. 건배사 만들기는 이쯤 해서 끝내고 다음부터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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