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정상 출범에 '비상등'이 켜졌다.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의 여파로 초대 총리 및 내각 인선 등이 차질을 빚으면서 새 정부가 일정상 정상적으로 출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차질을 부른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 당선인의 '나홀로' 스타일 문제
현재의 상황을 부른 직접적 이유는 인사 잘못 때문이다.'밀봉 인사'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보안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인사를 하다 보니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낙마 사태가 생긴 이후에야 박 당선인 측은 정부관계 기관의 협조를 받아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나홀로 인사' 스타일이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 당선인은 인사 과정에서 누구의 추천을 받고, 누구와 상의하는지 등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 비전과 철학을 이해하는 핵심 인사들과는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실제 박 당선인 측근들에게 인사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아무 것도 모른다" "인사를 언제 하는지도 모른다"등의 답변만 돌아온다.
이는 '2인자'나 '실세'를 두지 않으려는 박 당선인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특정 인사들에게 과도한 힘이 실림으로써 생기는 폐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측근 실세 배제 방침을 세운 것에는 긍정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측근들이 아무 의견도 제시하지 못하는 구조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3일 "지금 박 당선인 주변에는 정치적 동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비친다"며 "국정운영과 관련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소통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일을 박 당선인 혼자 하는 듯한 '나홀로 리더십'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홀로 리더십으로는 한계가 있고,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대통령 비서실장 등 공식적 논의 기구가 없는 상황일수록 인사 등 국정운영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역할 못하는 여당과 참모들
여당인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의 측근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여당은 물론 주변 참모들까지 박 당선인만 쳐다봤을 뿐이다. 당면 과제와 현안들을 스스로 풀어가거나 박 당선인에게 '직언'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
이 역시 박 당선인의 스타일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박 당선인이 '실세'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직언을 하는 참모들이 나오기 어렵다.
실제 박근혜정부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친박계 핵심 실세들은 대부분 대선 이후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할 일 다했다'는 식이다. 물론 측근들이 지나치게 휘젓고 다니는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요할 때 쓴 소리 한번 하지 않고 '나 몰라라' 식으로 처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 당선인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도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박 당선인과 국민 여론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하고 쓴 소리도 전달하는 게 집권당의 역할이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찾기 어려웠다.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가 있고 나서야 박 당선인과 당 지도부가 지난달 31일 비공개 회동을 한 게 그나마 유일한 소통으로 보인다. 한 친이계 의원은 "마치 복지부동하듯이 당이 아무 역할도 안하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하다"며 "당 지도부부터 나서 당선인에게 적극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안 제 때 통과되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제때 통과될지도 미지수이다. 여야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여야 정치권에서는 통상 기능의 산업통상자원부 이관, 농림수산식품부를 농림축산부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식품'명칭 제외, 미래창조과학부의 비대화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만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 조각 작업 등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 역시 대통령직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국회 및 여야 정당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편안을 마련하면서 최소한 여당과 상의했다면 여당 내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나오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일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 서울 지역 의원들의 오찬 모임에서도 김종훈 심윤조 의원 등이 통상 기능 이관 방안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은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면 큰 문제 없을 테니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협조를 당부했으나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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