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눈 쌓인 골목길에 어머니 발자국만 깊이 남아 있어요."
3일 만난 서울 상암고 3학년 이석현(20)씨는 "겨울에 눈이 오면 마음이 더 무겁다"고 말했다. 어머니 등에 업히지 않고서는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생후 8개월 만에 뇌성마비를 앓아 뇌병변 2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조차 없다. 오른손은 가벼운 컵을 들 수 있을 정도, 왼손은 노트 필기를 할 만큼만 움직인다. 5년 전에는 다리 근육과 뼈 12곳을 절개하는 큰 수술로 1년 간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씨는 곧 서울대 신입생이 된다. 그는 서울대 2013학년도 정시모집 기회균등전형에서 인문대 인문계열에 합격했다. 힘들 때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 구절을 되뇌곤 했다는 그는 "문학이 나의 생을 짓눌러 온 고통을 덜어줬다"며 "국문학을 전공해 문학을 연구하고 소외계층에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내가 필기하면 무슨 글씨인지 아무도 못 알아봐 보안 효과가 엄청나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또래에게 '왜 넌 걷지도 못하냐'는 놀림을 받고 상처도 많이 받았던 그는 10년 전 장애청소년 풍물패 '땀띠'에 몸담으면서 세상을 긍정하게 됐다. 북과 꽹과리를 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은 3명의 장애우와 함께 연 10여 차례 공연을 하는 수준급 단원이다. 틈나는 대로 복지시설을 찾아 공연하며 50여 차례 재능기부를 했다. '땀띠'는 지난달 29일 열린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섰다.
모정이 없었다면 이씨의 성장은 불가능했다. 어머니 최두희(46)씨는 매일 이씨를 업고 등하교를 함께하고 풍물패 연습실을 오갔다. 50㎏이 넘는 아들을 업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최씨의 허리와 무릎도 온전치 않다. 최씨의 남편은 이씨가 태어난 뒤 떠나버렸다. 혼자 힘으로 아들을 돌보느라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고 생활비를 대주던 친정 아버지마저 1년 전쯤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당장 아들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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