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에너지 절약의 걸림돌 중 하나는 단열 시공이 안된 다락방이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데도 약 40%의 가구가 공사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비용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영국인이 다락방에 쌓아놓은 쓰레기 청소가 귀찮아 공사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안 정부는 꾀를 냈다. 단열 시공 업체에 다락방 청소 서비스까지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다락방 단열 시공률은 급격히 올라갔다.
영국 정부가 추진해 온 '넛지(Nudge) 정책'의 성공 사례다. 원래 '팔꿈치로 쿡 찌르다'는 뜻의 '넛지'는 강요가 아닌 은근한 개입으로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행동경제학 개념이다.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2008년 낸 베스트셀러 서적의 제목으로 쓰여 널리 알려졌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남자화장실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 놓았더니 사람들이 오줌을 눌 때 그림을 겨냥해 소변기 바깥으로 튀는 오줌이 줄어든 것이 대표적 예다.
영국 정부는 이 이론을 정책에 반영, 국민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넛지 유닛'이라는 별명을 가진 행동통찰팀을 3년간 운영했는데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고 AFP통신이 3일 전했다.
넛지 전략은 세금을 걷는데 가장 잘 활용됐다. 행동통찰팀은 체납자에게 "당신 마을 사람들은 이미 다 세금을 냈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3,000만파운드(약 52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었다. 행동통찰팀의 데이비드 할펀 팀장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세 체납자들에게 그들의 자동차 사진과 함께 "세금을 내지 않으면 차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더니 자동차세 납부율이 3배로 늘기도 했다. 할펀 팀장은 "유로존 위기 이후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에 넛지 전략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며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정책 자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통찰팀은 영국 정부가 넛지 정책을 통해 향후 5년간 얻을 이득이 3억파운드(약 5,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영국의 성공 사례는 외국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영국은 지난해 9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넛지 정책의 해외 판매에까지 나섰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주민에게 이웃의 세금 완납, 에너지 절약 등을 고지해 따라 하게 만드는 '또래효과'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국가의 교활한 개입"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호주 일간 더오스트레일리안은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영국 정부의 유독 물질인 넛지 정책을 수입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넛지 정책이 국민의 무의식을 조작해 민주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국 내에서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중도 우파 정부가 영국 국민 삶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유모 국가'로 만들었다"는 조롱이 나온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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