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파괴가 없더라도 자연 생태계는 항상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수백 년 자란 숲도 번개로 시작된 자연 산불 때문에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기도 하고, 큰 강 주변은 매년 혹은 수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큰 홍수로 풀밭이던 곳이 하루아침에 물바다로 바뀌기도 한다. 여기에 덧붙여 인간들의 산림벌채, 외래종의 도입, 댐 건설이나 준설 등은 생태계의 근본을 뒤흔드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렇게 생태계에 가해지는 물리적 혹은 생물학적 충격을 교란(Disturbance)이라고 부른다. 전통적으로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교란이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안정적인 생태계를 뒤흔들어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생태계가 하나의 방향을 향해 계속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안정한 상태에 이른다는 매우 직선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란은 이렇게 안정한 상태를 해치는 돌발 변수로 이해했다. 어떤 이들은 생태계를 잘 관리하기 위해 이런 교란을 없애야 하며 이를 위해 작은 산불도 절대 일어나지 않게 숲을 관리하고,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둑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지면서 이러한 관점은 크게 바뀌었다. 인간 활동에 의한 파괴를 제외하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적절한 교란은 생태계 내에 생존하는 생물들의 다양성을 크게 높인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생태계의 경우에는 이런 교란이 없이는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아마존 강과 같은 아열대의 강들은 1년 내내 물이 범람했다가 빠졌다가 하는 주기적 변화가 반복된다. 이런 강에 서식하는 어류와 식물들은 이 홍수주기에 잘 적응해서 번성한다. 인간의 눈에는 홍수가 큰 교란으로 보이지만 하천에 살아가는 생물에게는 자신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필수 조건인 셈이다. 실제로 강을 뒤흔드는 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둑이나 보를 잘못 설치한 강에서는 물속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나 숫자도 줄고, 하천변의 식물들도 아주 간단한 몇 종으로 바뀌는 것이 발견되었다.
산림생태계도 마찬가지이다. 북미에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소나무 중에는 큰 산불이 일어나서 온도가 올라가야만 솔방울이 터져서 새로운 개체가 번식을 하는 종이 있다. 또, 소나무 좀과 같은 벌레가 창궐해야만 노년한 나무들이 건강한 새로운 나무들로 교체되어 건강한 숲을 유지할 수 있는 종도 있다. 큰 강가에서 서식하는 은단풍 나무도 주기적인 홍수로 다른 나무들이 교란을 받을 때 급속히 자라 큰 숲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극적인 교란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생태계는 중간 정도의 교란, 즉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뒤흔들어 놓을 강도의 적절한 교란이 있을 때 거기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다양성이 최대에 달하고 안정성도 가장 커진다. 마치 사람도 적절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일의 효율이 높아지거나, 어느 정도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야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과도 유사한 이치다.
대학에 있다 보니,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실패해서 좌절하고 있는 학생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수험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새해의 첫 달을 보내며, 또 곧 닥쳐올 설날에 많은 친척들을 만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원하는 직장이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 때문에 지금은 세상이 끝나는 듯이 느껴지겠지만, 이것도 자신을 단련시키고 더 큰 일을 준비시켜줄 하나의 교란이라 생각하길 바란다. 모두들 쉽게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주위에 부럽게 느껴지는 사람들 대부분은 큰 교란 속에서도 더욱 다양한 세상을 접하고 크게 자라난 이들이다. 만일 세상일이 그냥 자기 뜻대로만 된다면 '소고기 사먹을 일' 말고는 뭐가 남겠는가. 아픔에 대한 위로와 공감도 필요하지만, 어려움을 직면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더 큰 발전을 가로막는 행동이다. 기억하라, 큰 산불 뒤에 오히려 숲이 깊어지고, 큰 홍수 후에 강변에 식물이 무성히 자라고 물고기가 풍부해지는 생태계를.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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