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으로 가져온 쌀과 식자재를 팔아 돈을 챙긴 뒤 정작 외상값은 갚지 않는 수법으로 전국에서 사기 행각을 벌여 온 현직 소방관이 구속됐다. 해당 소방관이 저지른 속칭 '쌀깡'의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수십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부장 이진우)는 쌀 상회 업주 등 피해자들에게 쌀과 식자재를 외상으로 납품 받은 뒤 대금을 치르지 않는 수법으로 억대 금품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주민등록법 위반)로 소방공무원 최모(58)씨를 구속하고, 최씨의 사무실과 주거지를 압수수색 했다고 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 2월 피해자 H씨의 쌀가게에 찾아가 "내가 검찰청과 교도소를 거쳐 현재 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인데, 공공기관에 쌀을 납품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여 20㎏짜리 쌀 530가마니를 외상으로 받은 뒤 쌀값을 주지 않는 등의 수법으로 2008~2012년 H씨를 비롯한 피해자 4명에게 모두 1억4,000여 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최씨는 외상으로 받은 쌀을 바로 싣고 가 인근 지역 다른 쌀가게에 내다팔아 현금을 챙기는 '쌀깡'을 해왔으며, 쌀값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독촉을 받으면 돌려막기로 다른 피해자에게 뜯은 돈으로 일부만 지급하거나 허위로 지급약속 공증을 해줘 상황을 모면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결과 최씨는 상인들이 체불된 쌀값을 요구하거나 수사기관에 고소하겠다고 항의하면 "내가 공무원인데 돈을 떼 먹겠냐"고 엄포를 놓은 것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에게 "수사에 협조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오히려 협박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최씨는 반복해서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최근까지 모두 '혐의 없음' 처분됐다. 실제로 최씨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된 경찰서만 4곳이지만, 모두 "최씨가 신분이 분명하고 일부 피해액을 보상하고 있어 사기로 볼 여지가 없다"며 '각하'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씨가 전국에서 벌인 범행이 사기성이 농후한 계획적 수법이라고 판단한 검찰은 계좌추적 및 전국 동종사건 검토 등을 통해 최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최씨의 구체적 범행 동기와 빼돌린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수십 명의 피해자가 최씨에게 10억 원대의 금전적 피해를 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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