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미국 하원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해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협조 요청 배경과 원자력 협정 개정 전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당선인의 언급은 한국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 측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달라고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1974년 체결돼 2014년 3월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르면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용 후 핵연료의 형질 변경이나 전용, 제3국으로서의 이전 시 미국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원자력 협정에 포함된 '농축ㆍ재처리 불가' 조항이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핵확산 우려 등을 이유로 핵연료 재처리 허용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또 2016년쯤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장소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점을 들어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재활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은 핵연료를 처리하는 새 기술인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 원자력 발전 후 남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활용하여 다시 원자력 발전의 핵연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기존의 재처리 방식처럼 핵무기 확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을 들어 '파이로 프로세싱'에 대한 미국의 포괄적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은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양국은 2010년부터 원자력 협정 개정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 협상 진척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박 당선인은 향후 한미 관계에서 풀어야 할 첫 단추가 한미 원자력 협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박근혜정부 5년 동안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외교통상부도 지난달 1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새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가 핵 주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원자력 협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현재 미국은 비확산 체제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우리 정부 요구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파이로 프로세싱'을 핵무기 제조 가능성과 연관이 있는 재처리로 간주하면서, 북핵 해결 과정에서 새 장애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측은 특히 북한이 핵 실험 등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재처리 추진에 나설 경우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등 국내의 시민단체들도 박 당선인의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추진에 대해 "핵무기에 대한 위험성과 원전 산업 확장을 요구하는 핵산업계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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