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한지은(36)씨는 해외 인터넷 직접구매(이하 직구)로 미국 의류브랜드 D사의 점퍼와 영국 고가브랜드 B사의 유아용 남방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했다. 현재 국내 백화점 판매가격은 73만원. 하지만 D사의 홈페이지를 접속해보니 300달러 대에 팔리던 것이 99달러에 할인 판매되고 있었다. 물품가격에 현지 및 국제배송료를 더하니 총 금액은 128.9달러, 우리 돈으로 14만2,000원이었다. 한 씨는 "환율이 내려간 덕에 10% 이상은 추가로 절감하게 됐다. 요즘 미국 쇼핑몰들의 할인행사가 많아 부지런하게 찾으면 환율까지 더해 아주 싼 가격에 원하는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저(低)와 원고(高)가 실물경기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반대로 신이 난 소비자들도 있다. 미국, 일본 사이트에서 직접 저렴하게 상품을 구입하는 이른바 '직구족'들,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해외나들이를 선택하게 된 여행객들이다.
3일 관세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 인터넷 쇼핑규모는 6억4,000만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나 늘어났다. 직구의 유용성에 대한 입소문이 활발해진 탓도 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환율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직구 자체도 '단순 직구'에서 '쇼루밍(showrooming) 직구'로 진화 중이다. 쇼루밍이란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쇼핑몰의 전시장화된다는 뜻. 업계 관계자는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을 백화점 매장에서 직접 입어본 후 정작 구입은 해외직구를 통하는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예전 단순 직구 시절엔 사이즈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이젠 쇼루밍화가 이뤄지면서 그런 위험도 사라졌다. 환율 효과가 직구방식을 다양화시키고 있는 셈"고 말했다.
회원수 50만명을 둔 국내 최대 배송대행업체인 몰테일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이용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만건 늘어난 27만건에 달했다. 해외구매대행서비스 위즈위드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전년대비 이용객수는 23%, 매출은 20% 늘었다. 해외구매대행사이트인 이베이쇼핑의 1월 매출도 전월보다 25%늘었는데 특히 맥클라렌, 스토케, 퀴니 등 값비싼 유모차 판매량이 전년보다 50%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아용품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수입제품을 특히 선호하는 젊은 엄마들이 환율하락을 이용해 대거 직구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과거 직구는 미국 일변도였지만, 엔저로 인해 종래에 드물던 일본 직구도 새롭게 확산되고 있다. 몰테일에선 일본에서 직접 구매한 배송대행건수가 지난해 하반기 1만건으로 상반기보다 25%늘었고, 올 들어서도 배송대행건수는 전년보다 70%나 증가한 상황이다. 옥션과 G마켓에 공동 입점한 일본 최대 온라인 패션 쇼핑몰인 '조조타운'의 1월 매출도 전달보다 10배 이상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엔저현상으로 구매단가가 내려가고 일본 의류는 물론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덕분에 신이 난 건 해외여행족들도 마찬가지. 극심한 경기불황에도 불구, 여행사들은 지난 1월 역대 최고실적을 경신했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지난 달 해외여행객이 전년 동기 대비 30.7%나 증가한 18만5,000명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업계 2위인 모두투어 역시 1월 한달 간 10만3,000여명을 해외로 보냈는데, 창사 이래 10만명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엔저 덕에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이 급증. 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월간 1만명을 넘겼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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