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부총리를 부활시킨 건 1970년대의 추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총리를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개발을 추진했고, 또 성공을 거뒀던 그 때의 기억 말이다.
사실 개발연대의 경제부총리제는 대단히 효율적인 제도였다. 민간 시장 부문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자원을 배분하고 동원할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했고, 이는 경제부처를 총괄 지휘하는 ‘컨트롤 타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63년부터 98년까지, 박정희 정부부터 김영삼 정부까지, 경제부총리제가 무려 4개 정권에 걸쳐 4반세기나 지속됐다는 건 분명 유용한 제도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뒤 경제부총리는 폐지와 부활을 반복했다.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삐걱거릴 때면 언제나 ‘경제부총리 부활론’이 대두했고, 반대로 관치 폐해가 커지거나 작은 정부를 강조할 때면 예외 없이 ‘경제부총리 폐지론’이 등장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부터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까지 15년 동안 경제부총리는 두 번이나 없어졌다가 다시 두 번이나 되살아나는 기구한 운명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줬다.
이런 최근의 존폐사를 되돌아보면, 적어도 압축성장기를 끝낸 지금 시점에서 경제부총리제와 경제정책의 성공 사이에 명확한 상관관계는 없는 듯하다. 경제부총리가 폐지되어서 경제가 특별히 좋아지거나 나빠진 것도 없고, 반대로 경제부총리제가 부활했다고 해서 경제 운용이 유독 효율적이거나 비효율적으로 된 것도 없다. 경제부총리 그 자체는 경제의 성공을 위한 정답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답도 아니라는 얘기다.
중요한 건 박 당선인이, 아니 정부 출범 후 박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다. 누구를 임명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제부총리는 좋은 제도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최대 관심사는 누가 경제부총리를 맡느냐다. 학자 출신일까 관료 출신일까, 캠프 내 인사일까 아니면 외부 인사 일까. 이런저런 하마평은 나오지만, 박 당선인의 철통보안 인사스타일 탓에 별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인선과 관련해 한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경제부총리의 부활이 70년대 추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박 당선인은 아마도 남덕우씨를 ‘롤 모델’로 생각한 것 아닐까 싶다. 박정희 정부 시절 재무장관 5년에 경제기획원장관을 4년이나 역임한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 특히 그가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74~78년은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로 국정을 경험했던 바로 그 시기다. 박 당선인에게 경제부총리의 기억은 곧 남덕우씨에 대한 기억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아마도 새 정부 첫 경제부총리로 ‘제2의 남덕우’를 생각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남덕우씨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이자, 지금도 존경 받는 경제 원로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던 개발시대의 경제부총리와, 이미 민간 부문이 정부를 압도한 시장시대의 경제부총리는 역할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행여 박 당선인이 70년대의 컨트롤 타워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경제부총리는 무의미한 부활이 될 것이다.
또 한가지, 경제부총리 아니라 경제총리를 만들어도, 힘이 실리지 않으면 리더십은 불가능하다. 김대중 정부 첫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이규성씨는 부총리 타이틀이 없었음에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속에 최고 경제 사령탑으로 평가 받았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씨는 경제부총리였지만, 권력 핵심과의 마찰 속에 정책 하나 맘대로 내지 못했다. 적어도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혹은 청와대(특히 경제수석)의 힘이 너무 커지게 되면 경제부총리제는 100% 실패로 끝난다는 게 과거의 교훈이다.
이제 또 한번의 경제부총리 실험이 시작됐다. 그 성패는 다 대통령 하기에 달렸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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