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자 존 케리는 상당히 큰 '마놀로 블라닉'을 신어야 할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힐리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서 물러나면서 남긴 빈 자리를 이렇게 평했다. 마놀로 블라닉은 보통 1,000달러가 넘는 여성용 명품 구두다.
지난 4년 동안 명품 외교를 선보인 클린턴이 1일 퇴장했다. 1992년 남편 빌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 이후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까지 역임하고 20년 만에 일반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2016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만큼 여론의 부름에 응할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거처로 거론되는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부촌인 햄튼에서 길어야 2, 3년 그가 원해온 보통 사람의 삶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후임 케리 장관은 이날 취임한 뒤 업무를 시작했다.
클린턴이 퇴임 하루 전인 31일 초당적 싱크탱크인 CFR에서 한 재임 마지막 공개연설은 지난 4년을 회고하는 것이었다. 그가 국무장관에 취임할 당시 미결 서류함에는 두 개의 전쟁, 자유 낙하하는 경제, 전통 동맹국의 이탈, 미국 리더십과 핵심가치에 대한 세계의 의구심이 있었다. 4년 뒤 전쟁은 끝나가고 미국의 지도력과 동맹관계는 회복됐으며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클린턴은 자평했다.
그는 자신의 외교를 스마트 파워로 재규정했다. 소프트파워(문화)와 하드파워(군사력)의 한계를 극복한 스마트파워 외교의 성과로 그는 아시아 중심(재균형) 전략을 내세웠다. 특히 호주 다윈에 해병대를 배치하고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등 아시아 개입 확대는 창조적 외교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남중국해 분쟁 해소에 개입하는 것도 세계 에너지 공급의 갈등을 감소시켜 경제 성장을 지지하기 위한 스마트파워 외교의 성공 사례로 소개됐다.
클린턴은 미국이 21세기 글로벌 파워로 남기 위해 필요한 비전을 건축물에 비유해 설명했다. 냉전시대의 구조인 트루먼 독트린은 몇 개의 기둥에 의지한 정통적인 그리스 양식의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신전은 새로운 위기의 무게로 인해 흔들리고 있고 지금 세계는 대안으로 재료와 구조가 역동적으로 혼합된 프랭크 게리의 양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 게리는 춤추는 빌딩,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서 보듯 외형을 비트는 파격적인 건축으로 유명하다. 클린턴은 20세기에 구축된 미국과 세계의 관계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세계를 이끌 미국의 리더십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성취해야 한다고 했다. 21세기형 도구 없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트위터로 민주화 시위를 조직하고 테러범이 온라인으로 증오의 이념을 퍼트리는 지금 시대에는 외교에도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남편이 만든 조어인 '미국은 필수불가결한 국가'를 인용해 미국의 미래를 낙관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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