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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2월 2일] 은유로서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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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2월 2일] 은유로서의 질병

입력
2013.02.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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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술자리에 있던 소설가 박형서가 느닷없이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소설가 권여선을 통해 내가 한때 결핵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최근 결핵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왔다. 동병상련을 바란 것일까. 그랬다면 그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만하다. 같은 병에 노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와의 거리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핵에 관한 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워섬긴 뒤 투약의 효능을 점검하고 대체의학을 거론한 다음, 서로의 안녕을 빌며 이 뜻밖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결론은 하나였다. 이제까지의 생활 방식과 결별하고 ‘착한 어린이’로 거듭나야한다는 것.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식사 거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자기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것. 낭만파 소설가가 이 결론에 투정을 부렸다. 차라리 요절이 낫겠어요, 앗, 늦었구나.

알게 모르게 우리는 결핵과 문학적 신비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결핵은 가난한 식민지 문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질병이었다. 우리는 요절한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을 기억한다. 병마에 시달리던 이상은 친구였던 김유정에게 같이 죽자는 편지를 보냈으나 김유정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정작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김유정이었다. 죽기 직전, 김유정은 절친 안회남에게 편지를 보내 돈이 필요하다고 애청한다. 그 돈으로 닭 서른 마리를 고아먹고 땅꾼을 시켜 살모사와 구렁이 열 마리를 잡아오게 하겠다는 것. 그리고 탐정소설을 번역해 빌린 돈을 갚겠다는 것. 결핵이 야기한 이 애절한 요청은 한동안 한국적 모더니즘의 저개발의 상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결핵과 문학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질병을 둘러싼 해석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견과 왜곡의 산물일 뿐이다. 그 자신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미국의 여류문인 수잔 손탁은 질병과 관련된 이 은유적 사고방식을 지적하며 가장 건전한 방식으로 질병을 겪어내기 위해서는 이 사고방식에 저항해야한다고 일갈한다. 오랜 투병기간 동안 그녀를 괴롭힌 것은 병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병을 둘러싼 담론들이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문헌들, 특히 문학작품들을 통해 19세기의 결핵과 20세기의 암에 달라붙어 있는 이 ‘쑥덕거림’의 정체를 추적하고 그것이 형성되어온 역사적 맥락을 확인한 다음, 사회가 이 편견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 분석한다. 수잔 손탁의 주저 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것은 저작이 투병이 된 희귀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암환자 수잔 손탁의 투병은 결국 자신에게 가해진 사회역사적 오해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작년 집계 결과, 우리나라의 결핵환자가 4만 명을 넘어섰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결핵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결핵환자는 2010년 기준 10만명 당 97명으로, 미국(4.1명) 독일(4.8명) 영국(13명)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며칠 전엔 모 어린이집 원아 두 명이 결핵균 잠복감염자로 밝혀지고 교사 몇 명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드러나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 어린이집에서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결핵에 관한 오랜 감염공포가 새삼 수면에 떠오르게 되기도 했다.

사실, 민망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결핵은 결핵일 뿐이다. 후진국이라는 자괴감도, 공포심이 불러일으키는 마녀사냥도 무의미하다. 우리는 질병을 질병 그 자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실을 부풀려 특이한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편견과 오해에 노출되는 길이기도 하다. 문학적 로망인 요절은커녕 금주조차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우리의 결핵환자 박형서에게 나는 당부했다. 규칙적인 투약도, 운동도 다 필요 없다. 다만 한 가지, 술꾼 권여선을 멀리하라. 박형서는 권여선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그녀는 취한 듯 못들은 척했다. 그래도, 그것이면 된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수정 문학평론가ㆍ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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