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서 그는 아흔 살쯤 되면 늙는 양상도 달라진다고, 서글픔이나 원망 없이 늙는다고 했다. 어느 글에선가는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서글픔 없이 늙는 것이 싫고, 분별없이 숨쉬는 게 두려웠던 걸까. 그는 1989년, 꼭 여든 아홉 해를 살다 권총으로 자살한다.
그의 삶은, 죽음만큼 극적이었다. 군주국에서 좌익 공화국으로, 다시 우익 정부로, 소비에트의 위성국가로 조국의 운명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그의 삶도 어쩔 수 없이 유랑해야 했다. 신분적으로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고, 이념적으로는 실존주의와 자유주의 사이를 오갔던 그에게 저 역사의 파고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48년 조국을 떠난다. 스위스-이탈리아- 미국(뉴욕)- 다시 이탈리아- 다시 미국(샌디에이고). 41년의 여생 동안 이어진 망명생활 내내 그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힘센 말들을 마다하고 줄곧 영세한 모국어(헝가리어)로만 작품을 썼다. 조국에서 그는 '계급의 적'이었고 책은 금서였다. 그리고 망명지에서 그는 늘 외톨이였고 그의 문학은, 변방의 언어를 고집한 탓도 있겠지만, 그가 숨을 거둔 뒤 더 뜨겁게 조명됐다.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혹한 다음 무덤 속에 내팽개치는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러한 실패,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혼자 남아 대답하는 것…."(수상록 에서)
한 예술가의 극적인 삶이 그의 예술적 성취에 드리우는 광휘가 있다. 그 빛이 눈부셔 작품을 제 값어치보다 후하게 대접하는 예도 없잖아 있다. 이른 바 '고흐 효과'다. 생전에 푸대접한 데 대한 죄의식(?)을 보상받으려는 묘한 심리가 작용해 사후 작가와 작품을 호들갑스럽게 떠받드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내게는, 오직 작품으로써 거듭 환기되는 작가다. 일 때문에 책을 읽을 때는 작가를 먼저 살피지만, 쾌락의 독서일 때는 남독의 스릴을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어쩌다 눈에 띄어 읽게 된 게 그의 이었고, 뒤늦게 작가를 확인하고 그의 작품을 게걸스럽게 찾아 읽었다. 그 후 꽤 긴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의 삶을 대충이나마 듣게 됐고, 나는 그의 책들을 다시 읽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푸는 실마리로는 썩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경박한 짓이다. 그의 문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때 흔히 듣게 되는 매력적인 낱말들, 예컨대 존재 본성 심연 성찰 응축 밀도 등도 작품을 읽고 난 뒤의 어떤 감흥에 비하면 얄팍하고 경망스러운 감정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은 형제처럼 지내던 두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헤어졌다가 41년 만에 만나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를 내용으로 한다. 묻어둔 사연과 세월의 이야기. 나는 거기서 '사랑'과 '고독'을 읽었다.
이 작품뿐 아니라 산도르 마라이의 소설과 산문집들은 내가 감각하고 막연히 짐작하던 삶과 사랑의 전모를 저 모든 '이러쿵저러쿵'의 문학적 미덕들을 통해 진하게 느끼게 해준, 첫사랑 같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그늘이라 해도 좋을 고독을 그로 하여 어렵게나마 긍정할 수 있었다.
"사람은 서서히 늙어가네. 처음에는 인생과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기쁨이 늙어가지.(…) 기쁨에 대한 동경마저 사라지면, 추억이나 허영심만이 남네. 그런 다음 정말로 영영 늙는다네"같은 의 구절들은 "나는 온갖 고독을 알고 있다"거나 "삶의 중요한 것들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문장들과 엮여 그가 생애 동안 감당했던 두터운 고독의 기품을 느끼게도 한다.
충실한 그의 평전이 있다면 나는 서너 밤쯤은 이어 새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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