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북부의 투아레그족 출신으로 이슬람 무장세력인 안사르딘을 이끄는 이야드 애그 갈리(57)가 말리 내전의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운동 투사, 외교관, 협상가 등 다양한 경력의 그를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변화무쌍한 돈키호테형 인간"이라고 소개했다. 유럽연합(EU), 미국 등은 세속주의 세력과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오간 갈리가 말리 정부와 반군 간 가교 역할을 해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
사하라 사막의 여우
알제리 국경과 인접한 말리의 키달 지역에서 태어난 갈리는 투아레그 부족 내 이포가스 가문 출신이다. 유목민이었던 부모 밑에서 낙타 경주를 즐기며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 1970년대 정부군의 탄압과 가뭄 등으로 생활이 힘들어지자 갈리는 리비아와 알제리를 떠돌았다. 그 무렵 리비아의 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말리에서 건너온 유목민 청년들을 모아 레바논의 기독교 우파그룹인 팔랑헤에 대항하는 '이슬람 부대'를 만들었다. 갈리도 이 부대에 자원했다. 90년 이 부대가 해체되자 말리로 돌아온 갈리는 투아레그족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말리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투아레그족은 63년 말리가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 북부의 자치권을 요구하며 독립운동을 해왔다. 아자와드해방국민운동(MNLA)의 전신이었던 투아레그족 독립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한 갈리는 91년 알제리 남부 타만라세트에서 알제리 정부의 주관 하에 말리 정부와 평화협상을 진행했다. 협상과 전술에 능한 갈리는 이 때 '사하라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갈리는 인질협상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말리 알제리 등에서는 정치 불안정과 민족 간 잦은 분쟁 등을 틈 타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가 관광객을 납치하는 일이 잦았다. 갈리는 AQIM에 있는 사촌과의 친분을 이용해 AQIM과 유럽 국가 간 협상을 중재했다. 2003년 알제리 사하라 사막을 관광하던 독일인 등 16명이 납치됐을 때도 이슬람 강경단체인 살라피스트전투그룹(GSPC)과 독일간의 협상을 주도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당시 독일 정부는 갈리를 신뢰했으며 500만유로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갈리는 2011년까지 수십 건의 인질 협상에 개입해 부를 축적했다. 미국 국무부 자료는 "그는 이기주의적인 태도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아군과 적군의 양편에 모두 섰다"고 묘사됐다.
안사르딘 창설
2006년 아마두 투마니 투레 당시 말리 대통령은 세력을 확장하는 투아레그족과 평화협상을 진행했다. 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갈리는 2008년부터 3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주재 말리 대사로 부임했다. 사우디 체류기간 중 그는 보수주의 정통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와하비즘에 빠져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추종했다. 일정 거리를 유지했던 AQIM 등 이슬람 무장세력과도 자주 만났다. 2010년 말 사우디 정부는 그를 테러조직 연루 혐의를 들어 '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했다. 대사직을 박탈당한 갈리는 다시 말리로 돌아왔다. 2011년 카다피 정권의 몰락으로 친카다피 세력이었던 투아레그족 병사들이 대거 말리로 돌아오자 투아레그족은 이들을 흡수해 MNLA를 결성했다. 오갈 데 없던 갈리도 MNLA에 합류하려 했지만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MNLA측은 이슬람에 치우친 갈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MNLA에서 밀려난 갈리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따르는 이슬람 무장세력인 안사르딘을 창설했다. 갈리는 그 동안 축적한 재력을 바탕으로 병사들을 모집, 1,500명의 정예부대가 탄생했다. 이들 대부분은 카다피 정권 아래에서 싸운 전사였다. 안사르딘은 말리 북부 아구엘혹과 테살리트 등 정부군 주둔 기지를 잇따라 점령하며 세를 과시했다. 갈리는 점령지역에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적용했다. 불륜을 저지른 남녀를 투석형에 처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면 처형했다. 술 음악 영화 등도 일절 금했다. MNLA의 간부는 "부유한 플레이보이였던 갈리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로 돌변했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린 갈리
갈리는 승승장구했다. MNLA 등과 연계해 정부에 맞섰다. 지난해 3월 쿠데타가 발생하자 혼란을 틈 타 키달과 팀북투, 가오 등 북부 거점 지역을 모두 확보했다. 하지만 이달 초 프랑스군의 군사개입으로 MNLA와 안사르딘, AQIM이 수세에 몰리자 갈리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프랑스와 말리 연합군이 29일 팀북투를 탈환할 때 갈리의 고급빌라가 폭격으로 무너졌다.
내부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안사르딘 등이 통치하는 북부 지역 주민들은 가혹한 샤리아법 통치와 수탈로 불만이 팽배하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갈리가 제때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 이탈 병사들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외교 전문지 아프리카컨피덴셜의 패트릭 스미스 편집장은 "갈리는 서방을 도와 말리 정부 주도의 분권화 협상에 임하거나 아니면 알카에다와 함께 블랙리스트?올라 드론의 공격을 받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미국외교협회의 말리 전문가인 존 캠벨은 "협상에 능하고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갈리가 세력이 약해지면 끝까지 싸우기보다 정치적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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