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대의 상속재산을 놓고 벌어진 삼성가(家)의 유산소송에서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이 승소했다. 하지만 패소한 이맹희(82) 전 제일비료 회장 측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아 법정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이 전 회장 측이 주장한 청구 금액만 4조849억원, 소송 인지대만 127억원에 달하는 등 국내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1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전 회장과 차녀 이숙희씨 등이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주식 3,800만여 주와 이익배당금 등을 돌려달라며 낸 주식 인도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을 크게 '유족들이 적법한 상속 절차를 밟았는지' 여부, '상속 회복을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는지' 여부 두 가지로 판단했다.
이 회장 측은 상속 절차에 대해 "삼성생명 차명주식 등 차명재산은 선대 회장의 유지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이 협의해 이 회장 소유가 된 것"이라며 이병철 회장 사망 후 1989년 공동상속인 사이에 작성된 '상속재산분할합의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이 전 회장 측은 이에 대해 "상속재산분할합의서가 공증도 안되고 작성일도 없는 등 증거능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우선 이 부분에 대해 "상속재산분할합의서 작성 시기에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차명주식과 관련된 재산분할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뒤 다음 쟁점으로 넘어갔다. 남은 쟁점은 상속 회복을 주장할 수 있는 제척기간이 지났는지 여부. 제척기간은 법률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현행법은 상속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제척기간을 '상속권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회장 측은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1987년에 상속이 이뤄져 이미 10년이 지났고, 이 전 회장 측이 삼성 특검 수사결과가 발표된 2008년에 상속권 침해행위를 인지했다 하더라도 이 역시 3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 측은 그러나 "삼성 측이 보내온 '상속재산 분할 소명자료'를 본 2011년 6월이 인지 시점"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여기서 이 회장 측에 손을 들어주며 이번 소송의 향방을 갈랐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 등이 청구한 주식 중 일부는 이미 제척기간이 지났다"며 삼성생명 주식 17만여주에 대한 인도 청구를 각하했다. 큰 틀에서 판결의 방향이 정해지자 나머지 부분도 명확해졌다. 재판부는 나머지 삼성전자 주식과 이에 따른 이익배당금에 대해 "상속재산으로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 전 회장 측의 청구 자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 측이 2008년 삼성 특검 수사기록 등을 통해 찾아냈다고 주장한 삼성전자 차명주식에 대해서도 "상속재산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 등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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