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5월 땅주인과 건물소유권 분쟁에 휘말렸다. 도움을 청한 20년 지기 친구는 자신의 회사 고문변호사라며 '서초동 해결사'로 불린다는 김모(44)씨를 소개했다. 김씨는 어려울 것 같던 부동산소유권이전 가처분 신청 사건을 보란 듯이 처리했다. 믿음이 생긴 A씨는 본안소송까지 맡겼지만 연락이 뜸하고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했다. 전화를 걸어도 "가만히 있으며 알아서 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A씨는 수임료 수천만원만 뜯기고 말았다. 이에 고소를 한 뒤 사정을 알고 보니 김씨의 전형적인 사기수법이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1부(부장 김진숙)는 서울 법대 출신 변호사를 사칭해 5년간 100여 차례에 걸쳐 수임료 명목으로 2억여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로 김씨를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 등에 따르면 경기 군포시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던 김씨가 변호사 행세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법적 문제가 생겼는데 도와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으면서부터다. 틈틈이 쌓은 법 지식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자 자신감이 생긴 김씨는 서울 법대 출신 부동산 및 세법 관련 전문 변호사라고 속이며 소소한 사건 위주로 수임료를 챙겼다.
동네에서 알음알음 사건을 수임하던 김씨는 2003년 10억원이 넘는 소송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일약 '서초동 해결사'로 거듭났다. 사실 여부는 확인이 안 되지만 법률 지식이 짧은 이들 사이에서 "일반 변호사들은 수임료가 싸다고 거부하는 간단한 소송들까지 다 해결해 주는데 실력이 좋다더라"고 입소문이 난 것이다.
김씨는 세무서 직원들과도 호형호제할 정도로 넓은 인맥을 쌓았고, 의뢰인을 가리지 않았다. 변호사에게마저 거절당한 이들에게 김씨는 해결사나 다름없었다.
김씨는 2010년부터 번듯한 수출 회사 임원까지 맡으며 더욱 대담하게 사기 행각을 벌였다. 법원이 상대적으로 고소인 측 요구를 잘 들어주는 가처분 소송을 넘어 본안소송에까지 손을 댔다.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를 따로 두면서 자신은 법률자문 자격으로 간여해 정체를 숨겼다. 한류문화축제를 시도하는 등 대외활동에까지 손을 뻗쳤지만 이런 대담함이 결국 제 무덤을 팠다.
검찰 관계자는 "건당 떼먹는 수임료가 워낙 작아 주목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며 "공소시효(5년) 이전 범죄까지 포함하면 사기 건수는 200회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가 본안소송까지 다루며 수임료가 커지자 업계에 말이 돌았고 피해자들의 고소장이 쌓여 결국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김씨는 검찰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려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씨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서는 공탁보증서 인지영수증 보증보험영수증 등 소송에 필요한 기초 서류들을 위조한 흔적도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변호사 섭외와 사건 처리 등 혼자서 범행 일체를 도맡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공범 여부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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