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의 주체는 최태원 회장이다."
'SK 계열사 돈 횡령을 지시한 주체가 누구냐'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측이 벌인 치열한 법정 공방을 1년 간 지켜본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다.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공모해 최 회장 모르게 회사돈을 빼돌린 것"이라는 최 회장 측 논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제시한 각종 정황과 물증이 대부분 유죄의 증거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계열사 돈을 빼돌린 사정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2008년 SK 계열사들의 펀드 출자 당시 최 회장이 증권사에 담보로 맡겼던 회사 주식의 가격이 하락해 재무적 위기를 겪었던 점 ▲당시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로 금융시장이 위축돼 저축은행 대출이 어려웠던 점 등을 적시했다. SK텔레콤 등 그룹 주력 계열사가 중심이 돼 별다른 내부 검토나 협상도 없이 한 달 만에 1,000억원대에 이르는 출자금을 일사불란하게 조성한 점도 재판부의 유죄 심증을 굳혔다. 펀드 조성 과정 및 이후 자금 흐름이 기록된 SK재무팀 담당자 작성 문건 등은 이 같은 정황에 대한 구체적 물증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재판부는 동생 최 부회장을 형의 혐의를 대신 뒤집어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최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으로 기본 형량이 징역 5~8년이다. 재판부는 횡령 피해가 회복된 경우에는 형량을 줄일 수 있게 한 양형 기준을 따라 기본 형량보다 낮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어 "법정구속에 대한 특별한 예외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최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이날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이원범(48ㆍ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바로 며칠 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게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지난해에는 뇌물을 주고 받은 이국철 SLS조선 회장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모두 징역 3년6월을 선고하는 등 고위층 부패 범죄에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검찰 조서보다 법정 진술을 중시하는 공판중심주의의 대표적 판사로 꼽히며 올해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의해 우수 평가 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 영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법, 서울고법, 대법원 행정처 등에서 근무하다 정ㆍ재계 부패사건 전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에 2011년 2월 부임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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