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새롭게 출범한다. 지난해는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시도 사건을 비롯해 품질보증서를 위조한 부품 사용과 관련 납품 비리 등 이제껏 숨겨져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노출되며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 악몽 같은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등 일부 국가가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나,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원전 보유국은 각국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해 원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차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국내 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60%에 육박하므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은 국가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우수한 두뇌와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지만, 그 보다 더 밑바탕에는 필수적인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온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이 있었다. 현재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해 화석연료 소비를 줄여야 함으로 이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입지조건마저 좋지 않아 단기간에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기술이 개발되어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대체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도 꾸준히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기에 빨리 좋은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당장 2020년까지 화력발전의 30%를 줄여야하는데 새 정부의 목표인 경제성장율 3% 이상을 감당할만한 다른 에너지원이 마땅히 없다. 기록적인 한파로 전력사용량이 사상최대치를 기록한 3일엔 예비전력이 200만kW에도 미치지 못했을 만큼 지금도 전력수급에 여유가 전혀 없다. 그나마 품질서류가 위조된 부품이 전량 교체되어 관련설비의 안전성이 종합적으로 확인된 영광 5, 6호기가 재가동돼 전력수요에 약간의 숨통이 트였을 뿐이다.
발전소를 더 지어야하지만 현실적으로 원자력 이외에는 이러한 수요를 감당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 당분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분간 원자력을 택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몇 가지 시급한 과제들이 있다.
첫째, 무너진 원자력 안전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원자력은 지속되기 어렵다. 정부, 규제기관에서부터 한수원, 전력계열사들까지 국민 신뢰를 가장 우선 시 하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정책담당자들의 잦은 자리이동으로 인한 NIMT(Not In My Term) 현상을 최소화해야한다.
둘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안전위원회가 출범한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잘못을 수습하느라 제대로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무엇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하지만, 정부는 예방을 위한 노력에는 매우 인색하다. 정부는 사고를 수습하는 비용보다 예방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새 정부는 안전위원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과감하게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법규가 원전 안전을 리드할 수 있도록 규제효율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보다 적극적인 스킨십을 가져야 한다.
셋째, 사용후핵연료 처분방안에 대한 국가차원의 로드맵 수립과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2016년 고리를 시작으로 지금 당장 조밀랙을 설치해 저장용량을 늘리더라도 지금부터 10년 내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완전 포화된다.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없어 새 연료를 넣을 수도 없어 원전가동이 중단되고, 수리도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올해 새롭게 출범하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수립에는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일자리 창출, 복지 등 예전보다 정책 수립 시 고려해야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국민 모두를 포용하며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일 것이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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