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20대 여성 피살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친구 이모(23ㆍ옷 가게 종업원)씨가 경찰의 조사를 받은 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틀 뒤 진범이 붙잡혀 경찰의 강압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이씨의 유족에 따르면 대전 둔산경찰서 경찰들은 26일 직장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씨를 연행하며 "네가 그 여자를 죽였지"라고 피의자 취급을 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뒤 이씨는 가까운 동료들에게 "여자친구가 살해돼 심적으로 힘든데 경찰까지 나를 범인으로 몰고 있다. 난 안 죽였는데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심하게 괴로워했다. 이씨의 형은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동생이 경찰의 무리한 수사에 충격을 받았다"며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해 일찌감치 진범을 잡았더라면 동생이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27일 정오쯤 대전시 동구 자양동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이씨의 방에서는 '나는 범인이 아니다. 억울하다. 진범을 찾아내 엄벌해 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씨는 23일 대전 유성구 지족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오모(23ㆍ미용사)씨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26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에 연행된 뒤 5시간 가량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당시 경찰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다음날 이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등 추가 조사를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이씨가 받지 않자 자택을 직접 찾아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진범은 이씨가 숨진 지 이틀 후인 29일 검거됐다. 경찰은 이날 오씨와 같은 빌라 위층에 사는 김모(27ㆍ무직)씨를 긴급 체포했다. 김씨는 23일 오후 2시쯤 빌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오씨를 우연히 만나 오씨의 집에서 차를 마시며 취업문제 등에 대해 대화하던 중 외모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오씨를 흉기로 찌르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린 시절부터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고 외모 때문에 취업도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오씨가 내 얼굴이 '살인범을 닮았다'고 말을 해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김씨의 집에서 오씨의 휴대전화와 혈흔이 묻은 옷과 신발을 찾아냈다.
진범이 잡히자 이씨의 유족들은 "경찰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무리하게 수사를 벌였다"고 반발했다. 둔산경찰서측은 "이씨의 행적 등에 대한 진술만 받았을 뿐 강압적인 수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전=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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