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에 사는 정종련(73)씨는‘무호적자들의 대부’로 통한다. 지난 30년간 자비를 들여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나 장애 노인 등에게 호적을 만들어 주는 봉사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3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호적이 없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채 80년 동안 산 분들이 뒤늦게 호적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씨의 호적 만들기 봉사는 1983년 12월 어느 날 구두닦이 소년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전남 여수에서 어업을 하던 그는 집 근처에서 한쪽 팔이 없어 입과 나머지 한 손으로 힘겹게 구두 5켤레를 들고 가는 박모(당시 12세)군을 도와 주며 따라갔다. 그런데 박군을 포함해 구두닦이 10대 5명 중 3명이 가출하거나 부모에게 버려져 호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부모 이름이나 고향도 모르는데다 호적도 없어 부모를 찾아줄 방법이 없었어요. 호적을 만들어 주려고 여수시와 순천의 법원을 갔지만, 최소 2명이 신원을 보증해주는 ‘인우보증’을 아무도 서주지 않더군요. 결국 4번이나 퇴짜 맞은 끝에 법무사의 도움으로 2개월 만에 호적을 만들었지요.”
이때부터 호적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역방송국과 반상회보 등에 무호적자가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요청, 이를 통해 연락해 온 무호적자 975명에게 호적을 만들어주고, 인우보증도 대부분 자신이 섰다. 호적을 만들 때마다 필요한 무적증명서, 인지대금 등 각종 수수료 대금 5만~10만원 역시 정씨 몫이었다.
그는 또 16년간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에 편지 1,350통을 보내고, 담당 공무원과 160여 차례나 만나 무호적자 지원 제도 마련을 요청하는 열성을 보이기도했다. 그 덕분인지 행안부가 1999년 1~6월 ‘무호적자 일제조사 및 취적 지원’에 나서 6,357명의 호적을 찾아주고, 2005년에는 법무부 인권과가 무호적자 인권팀을 가동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정씨는 소외계층 인권보호에 앞장선 공로로 2005년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았다.
“호적이 없으면 자기 명의 통장, 휴대전화도 개설하지 못합니다. 정부가 무호적자 지원법을 제정한다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사람이 사회적 보호를 받을 겁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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