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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너 감옥에 언제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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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너 감옥에 언제 가니?

입력
2013.01.3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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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에서 한국전쟁 이후 적수공권으로 서울로 상경하신 아버지께서는 평생 골재업을 하셨다. 새벽 6시면 출근하시고 한 달에 한두 번만 쉬면서 매일매일 모래, 자갈과 전쟁을 하셨다. 아버지는 공부도 많이 못했고 평생 고생만 하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큰아들인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 육군학생군사학교(ROTC)에 지원해서 장교로 군생활을 마친 후 농협이나 공무원시험을 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기 바라셨다. 그러나 ‘딴따라’의 피가 흐르는 나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신이 보기에 영화를 하는 큰아들 놈이 영 마뜩잖으셨다. 아버지는 당신 아들놈이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가죽가방을 드는 직장생활을 하길 바라셨는데, 영화 한답시고 청바지에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니 영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러기생활을 시작한 나는 부모님이 있는 본가로 들어가게 됐다. 안 그래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일단 아버지는 계속 영화를 하는 내가 불만이셨고, 잦은 술자리를 갖는 내 생활을 걱정하셨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를 붙잡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영화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면 안되겠냐”고 진심으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한번은 준비중인 시나리오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거실탁자 위에 올려놓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찾다 보니 아버지가 시나리오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라면을 드시고 계셨다. 난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 이 시나리오가 얼마짜리인 줄 알고 라면받침대로 쓰시는 겁니까?”하고 화를 내자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시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난 거칠게 시나리오를 빼내면서 “아버지 이게 한 장에 5,000만 원짜리고 전체 50억짜리 재료입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이 순 사기꾼 같은 놈아, 그래 그 종이쪼가리를 같다 주고 남에게 50억을 받는단 말이냐?”라고 되물으셨다. 이런 고지식하신 분이 내 아버지다.

지금이야 영화 ‘광해’가 잘 돼서 아버지가 내 걱정을 별로 안 하시지만, 그간 내가 만드는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자 항상 노심초사셨다. 2004년 4월초 영화 ‘마지막 늑대’를 개봉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리만치 관객에게 외면 받았다. 그 해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나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일식당에 초대했다. 평소 회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일부러 횟집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일체 음식에 손대지 않고 평소 즐겨시는 과실주만 맥주컵에 한가득 따라 드셨다.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음식을 권해도 묵묵부답 그저 과실주만 드셨다.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선 술기운에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으셨다.

“너 이번 영화가 잘 안됐다는데 얼마나 손해를 보는 거니?” 나는 아버지께 “글쎄요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한 20억 원정도 손실을 볼 것 같습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 어!” 한숨을 푹 쉬시면서 과실주를 연신 들이키셨다. 그리곤 나를 눈물고인 눈으로 바라보시며 “큰 애야, 그러면 넌 감옥에 언제 가니?”

아버지 생각에 남의 돈 수십억 원을 손해 보게 한 놈은 감옥에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하지만 연로한 아버지에게 투자환경이나 계약조건 등을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어서 “아버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지금 감독이 감옥에 가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그래? 그럼 넌 앞으로 절대 감독을 하지 말아라”하시며 회를 드셨다.

그 후로 난 아버지의 “넌 감옥에 언제 가니?”를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물론 정당하게 투자금을 집행하고 사용했다면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서 감독이나 제작자가 감옥에 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로서, 내가 만드는 영화를 믿고 투자해 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게 하면 감옥에 가야 된다는 심정으로 현재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버지, 앞으로도 감옥에 안 가도록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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