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원 가까운 계열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반면 '공범'으로 규정됐으면서도 횡령액수가 더 크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됐던 동생 최재원 그룹 부회장은 무죄로 풀려났다. 수사 당시 봐주기 의혹이 제기됐고, 불법행위의 주종 관계를 따져도 석연치 않던 검찰의 기소 결론이 재판과정에서 '상식적 수준'으로 재정리된 셈이다.
주목할 것은 판결 이유다. 최 회장의 범행을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범행수단으로 삼은 행태"로 규정한 재판부는 "최 회장의 그룹 내 위상과 충격,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기업의 폐해가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없듯, (이러한 범죄 외적 요인들을 고려해) 낮은 양형을 정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과거 재벌 총수들은 법정에 설 때마다 "국민경제에 끼친 기여와 영향, 경영공백 등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의 이른바 '정찰제 형량'으로 선처 받고 풀려나는 일이 반복돼왔다. 재판부의 언급은 재벌 총수에게도 역시 범행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을 뿐, 더 이상 이런 식의 정상참작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법원의 원칙적 처벌은 지난해 초 태광그룹 오너 모자에 대한 실형 및 법정구속, 여름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 등으로 이미 일관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대기업 관련 범죄는 통상 범행 규모가 크고, 법질서와 국민의 법 감정 차원에서도 그 상징성과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도리어 엄중 처벌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대기업 범죄에 엄격해 2년 전 회계조작으로 파산한 미 엔론의 CEO에게는 24년4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새 정부도 공언한 '경제민주화'의 요체도 다른 게 아니다. 특혜를 배제한 원칙적 법 적용을 통해 재벌 대기업의 폐해와 부작용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최 회장 사건을 비롯, 법적 형평성에 입각한 최근 일련의 재벌총수 관련 법원 판결이 남다른 시대적 의미를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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