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부리는 장난 중 하나가 외국어로 건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영어로 건배사를 한다고 잔뜩 관심을 불러일으켜 놓고 겨우 “원 샷!”이라고 외치거나 불어를 한다고 예고하고는 “마셔 부러!”라고 하는 식인데, 이 수법도 이제 몇 년 지나다 보니 속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다. 말하자면 시효가 지난 셈이다. 아직도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건배사 학습 지진아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요즘은 진짜 외국어,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생소한 외국어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메아 쿨파(Mea Culpa)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코이노니아(koinonia) 이런 것들이다.
먼저 메아 쿨파. 이것은 라틴어로 ‘내 탓이오’라는 뜻인데,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자는 의미로 쓰이는 건배사다. 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mea maxima culpa),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가톨릭 기도문에서 나온 말로,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덕분에 아주 유명해졌다.
카르페 디엠이 널리 알려진 것은 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인데, 이것도 ‘현재를 즐기자(Seize the day)’라는 라틴어다. 영화에서는 영어교사인 커팅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자주 사용한다. 역경에 굴복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자는 메시지를 담은 말이다.
애니메이션 에 등장한 이후 건배사로 잘 쓰이는 ‘하쿠나 마타타’는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옮기면 “걱정거리가 없다”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인데, 에서의 한국어 더빙은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라고 돼 있다.
역시 라틴어인 ‘스페로 스페라’도 비슷한 내용이다.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인데, 그래서일까 이런 이름을 붙인 술집을 꽤 볼 수 있다. 아무렴, 술을 마시면서 희망을 찾아야지.
그리스어 ‘코이노니아’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관계를 말한다. “코이노니아!”라고 선창하면 “코이노니아!”라고 받아줘야 된다.
건배사로 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 네가 죽을 것을 생각하라는 말도 건배사로 쓸 수 있다. 라틴어인 이 말은 고래 로마제국시대에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이 행진할 때 개선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외치던 말이다. 전쟁의 승리는 모두의 환호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런 너에게도 언젠가 죽을 날이 오니 겸손하라는 외침이다.
그렇다면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말도 건배사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이것도 라틴어이지만,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니 메멘토 모리와 직결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진짜 외국어와 달리 외국어처럼 들리게 하려고 요즘 만들어진 게 ‘소취하 당취평’이라는 건배사다. 풀이하면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 행복하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중국어처럼 들리게 하려고 당취평을 당취핑으로 읽는 것이다. 習近平을 시진핑, 鄧小平을 덩샤오핑이라고 읽는 것과 같은데, 신기한 듯하지만 그리 권장할 만한 좋은 건배사는 못 되는 것 같다. 뭔가 좀 더 그럴 듯한 걸 개발해내야 할 텐데.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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