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였다. 다만 의도적 침해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양사가 벌인 세기의 특허소송 1심은 삼성전자가 애플에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금만 줄어드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질 공산이 커졌다.
외신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는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애플의 특허를 의도적으로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해 8월 배심원들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6건을 침해했고, 이 중 바운스 백(손가락으로 화면을 끝까지 내렸을 때 반대로 튕겨지는 기술) 등 5건은 의도적 특허 침해라고 적시하면서, 이를 근거로 삼성전자가 10억5,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고 판사는 그러나 "배심원단 평결은 무효인 만큼 사건을 평결 이전으로 되돌려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삼성전자의 평결불복법률심리(JMOL) 요청을 기각했다. 배심원단이 내린 특허침해 판단 자체는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앞마당 평결'이란 비판이 나올 만큼 지나치게 애플에 일방적이었던 배심원 평결 자체를 뒤집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현재 미 법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따라 특허침해가 '의도적'이라고 판단하면 손해배상액을 최대 3배까지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판결에 따라 삼성은 최소한 10억5,000만달러 이상의 배상액은 물지 않게 됐으며, 실질적으로 감액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판사가 배심원 평결을 완전 번복하는 건 처음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고의적 침해가 부인된 만큼 판사가 최종 판결에선 배심원이 평결한 손해배상액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때문에 삼성 입장에선 '절반의 뒤집기 성공'이고, 애플로선 '절반의 지키기 성공'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종 배상액은 추가 판결을 통해 정해진다.
이날 판결로 특허소송 1심은 배상액을 뺀 주요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대부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애플 모두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으로선 배상액 규모와 상관없이 특허침해 판결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손해배상액 산정에 대한 최종판결이 남아있는 만큼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면서도 "1심 법원이 사실상 삼성의 특허침해를 인정한 셈인데 항소심에서 제대로 다시 따져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애플 역시 특허 침해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점점 삼성전자에 밀리는 형국이라, 소송으로라도 더 물고 늘어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양사가 합의할 뜻이 없음을 밝혀온 만큼 특허소송의 1심이 끝났을 뿐"이라며 "상급심의 판결에 따라 다시 한번 양사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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