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참여 ‘산 증인’ … 부담감에 공황장애
나로호의 성공적인 발사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협력업체 직원 등 500여 명의 구슬땀이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나로 우주센터 책임자인 민 경주(왼쪽 사진)나로 우주센터장은 ‘나로호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가 우주센터 부지로 선정된 2000년 12월부터 대전에서 나로호개발사업에 참여했으며 2006년부터 센터장을 맡아 외나로도를 지키고 있다.
대구 태생인 민 센터장은 인하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크론대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2000년부터 항우연에서 나로호 개발사업을 맡고 있다.
조광래(오른쪽) 항우연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동국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로켓인 ‘과학 1호’, 액체 추진과학로켓(KSR-Ⅲ) 등 우리나라 우주산업 발전과 역사를 같이했다.
조 단장은 2004년부터 나로호상단부 킥모터(고체모터) 개발을 위한 전담팀을 꾸렸고 발사추진단장을 맡아 나로호 발사의 본격적인 개발을 주도해왔다.
나로 호 개발 과정에서 극심한 중압감으로 공황 장애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차 발사가 시작된 2009년부터 나로호 사업에 참여한 장영순 발사체기술연구소 발사체구조 팀장 역시 1차 발사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된 페어링 설계를 담당해 개발기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이철형 나로 우주센터 체계관리 팀장은 우주센터 기획단계인 2000년부터 사업에 참여했다.
나로우주센터로 파견온 지 꼬박 69개월을 채웠다.
박정주항우연 발사추진기관실장도 2002년 나로호 개발사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실무자다.
이 밖에도 임석희 발사체기술연구소 발사체추진기관팀 박사, 킥모터를 개발한 조인현나로호체계종합팀 박사,정의승 나로호체계종합 팀장 등이 우리나라 우주산업을 끌고 온 나로호 발사의 숨은 주역들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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