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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소 등정

입력
2013.01.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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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메스너는 1978년 5월 8일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순간 너무 지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한동안 돌멩이처럼 앉아만 있었다. 사진 찍기도 힘들어 한참이나 버둥댔다. 하산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은 메스너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고 한다. 그는 "다시는 8,000㎙급 봉우리를 무산소로 단독 등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스위스의 등반가이며 의사인 에두아르 뒤낭은 7,500㎙ 이상을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다. 평지의 3분의 1 수준인 산소 부족 현상으로 신체기능이 급속도로 쇠퇴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봤다. 1988년 에베레스트를 오른 산악인 정승권씨는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은 상태"라고 표현했다. 고 박영석 대장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후유증으로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 1년 넘게 고생했다. 국내 세 번째 8,000㎙급 14좌 완등 기록 보유자인 한왕용씨는 무산소 등정 후 뇌수술을 해야 했다.

■ 무산소 등반은 알파인 등반과 함께 진정한 알피니즘으로 인정받는다. 산소통도, 짐꾼도, 세르파도 없이 장비와 식량을 직접 짊어진 채 루트를 개척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등반하는 방식이 알파인 등반이다. 정상 정복에 목적을 두지 않고 강인한 체력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한 과정을 중시한다.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행해지던 등반법에서 유래한 알파인 등반은 이제 히말라야의 8,000㎙급 고봉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산악인 김창호씨가 3월 대학 후배와 함께 에베레스트 무산소ㆍ무동력 등정에 도전한다. 대개 베이스캠프까지는 자동차나 항공기로 이동하지만 이들은 카약과 사이클, 도보로 도착할 계획이다. 이번 등정에 성공하면 아시아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등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해에는 무산소ㆍ알파인 방식 등반자에게만 주는 산악계의 오스카상인 '황금피켈상'을 받았다. 서울시립대 입학 후 그저 산이 좋아 쫓아다니는 바람에 25년 만인 다음달에야 학사모를 쓴다. 물론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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