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어요!'
30일 오후 4시, 온 국민의 염원을 담은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가 우주의 품에 안기는 순간, 김지훈(36) 한국항공우구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로호의 궤적을 숨죽이며 뒤쫓던 그는 선배 로켓공학자이자 아버지인 김유 전 충남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떠올렸다. 대를 이어 우주를 향한 부녀의 꿈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이번 성공의 주역은 밤낮없이 발사에 매달린 200여 연구원이다. 1차, 2차 발사가 실패할 때마다, 또 3차 발사시도에서 두 번이나 카운트다운이 중지될 때마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배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서로 만나도 얘기도 나누지 않고 지나칠 뿐이었다. 때문에 이날의 성공을 보는 연구원들의 심정은 남다르다.
어렵사리 전화로 연결된 김 연구원은 "셋째 아이를 잉태하는 마음으로 나로호를 만들었고 발사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발사대 구축부터 2단 로켓에 산화제(액체산소)를 공급하는 기술을 담당했다. 나로호 개발에 처음 합류했던 당시 김 연구원의 둘째 딸은 10개월도 채 안된 갓난아기였다. 어린 딸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대전 항우연과 나로우주센터를 오가는 날이 이어졌다.
발사 준비 두 달 전부터는 한 달에 기껏해야 두 번 정도 가족을 만났다. 하지만 "엄마가 나로호 발사팀 연구원"이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던 딸들을 생각하면 없던 맥이 풀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힘이 솟았다.
김 연구원은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한번은 수업을 듣는데 어디선가 "꽝"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엔진 연소시험을 하던 중 사고가 난 것이다. "당시 노즐이 튕겨져 나가서 300미터 있는 테니스장 펜스를 뚫고 지나갈 정도로 강력했어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방화복을 입고 직접 불 속으로 들어가 사고를 수습했다는 얘기를 들었죠."
귀가한 아버지가 "나 오늘 죽을 뻔했다"고 하셨을 때 로켓 연구에 대한 열정을 확인했다"고 김 연구원은 회상했다. 그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두 차례 발사에 실패하고 또 다시 발사가 연기되면서 연구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최선을 다한 뒤의 실패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패배감도 감당하기 힘든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까지 감내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김 연구원은 한국형발사체 개발에 참여할 예정이다. "늦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경험도 얻었습니다. 이제 모처럼 가족과 함께 달콤한 휴식을 갖고 싶습니다."
나로우주센터(고흥)=권대익기자 dkwon@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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