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자진 사퇴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출발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무엇보다 새 정권을 이끌어야 할 박 당선인의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 박 당선인의 사실상 첫 번째 인사가 닷새 만에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 인선은 박 당선인의 '나 홀로 인사' '밀실 인사'였던 만큼 그의 통치ㆍ인사 스타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또 박 당선인이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약자 배려를 실천할 인물'로 내세운 김 후보자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함으로써 박 당선인의 '법치와 원칙', '국민대통합' 브랜드에도 오점이 남게 됐다.
향후 조각 인선 및 정부 조직개편 작업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총리 후보자 인선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김 후보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도 인물난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각 부처 장관 인사 및 총리ㆍ장관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도 줄줄이 연기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새 정부 출범(2월 25일) 때 일부 국무위원을 새로 임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당선인은 여론이 더 악화해 이 같은 정치적 파장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김 후보자 조기 낙마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끌어 두고두고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두 아들 병역 면제 및 재산 형성과 관련된 도덕성 의혹들이 매일 몇 건씩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해명을 내놓고 수습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의 두 아들이 모두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을 치명적 결격 사유로 봤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 당선인과 김 후보자가 각각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총리 후보자의 두 아들에게 병역 의혹이 있다는 점이 이슈가 될 경우 악화된 여론에 자칫 기름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엔 "이명박 정부도 여론을 거스른 채 조각 인선을 강행하려 한 것이 정권 내내 발목을 잡았다"면서 "박 당선인의 지지도가 더 추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의 총리 임명을 강행하려고 해도 국회 표결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만일 여당 일부에서 이탈표가 나와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 박 당선인의 국정 장악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에 대해선 도덕성 의혹 이외에도 청력이 약해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 행정부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 등 때문에 새누리당에도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한 재선 의원은 "김 후보자가 고령이나 건강 문제로 책임총리라는 과중한 업무를 감당할지 걱정이었다"면서 "총리 임명동의안이 원만하게 처리될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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