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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고춧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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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고춧가루

입력
2013.0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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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후각이 예민했다.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부엌에서 담장을 넘어온 냄새로 저녁 반찬을 알았다. 결혼 뒤에도 거실에서 TV를 보며 냄새만으로 "국이 짜다"는 등의 잔소리를 하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개띠라서 그렇다"지만 순전히 농담이다. 코가 예민해서 좋은 일도 있지만, 엉뚱한 괴로움도 많다. 자연의 냄새는 어느 정도 견딜 만하지만 도시에 가득한 비자연적 냄새는 질색인 때문이다.

■ 겨울이라 좀 덜하지만 서울의 하수도 냄새는 '세계 정상급'이다. 게다가 말끔히 치워진 뒤에도 한동안 거리를 떠도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도 지독하다. 출근길 버스 승객들의 화장품과 향수, 머릿기름 냄새도 골치 아프다. 디젤엔진 배기가스나 페인트 용제를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 냄새는 코를 깊이 찌른다. 여름철 지하철역에서 풍기는 '썩은' 걸레 냄새, 닭 튀김 집을 지날 때 맡게 되는 산패(酸敗)한 기름 냄새, 온갖 곰팡이 냄새로 도시는 뒤범벅이다.

■ 순수한 메밀 맛에 가장 가까운 막국수를 즐기다 보니 춘천 소양강 댐 가는 길의 어느 막국수 집에 정이 들었다. 서울 분점에 가끔씩 들르는데 얼마 전부터 견디기 어려운 특이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김을 의심했다. 묵은 김의 곰팡이 냄새라고 여겼지만 이내 착각임을 깨달았다. 서울 시내의 유서 깊은 한정식 집에서 똑 같은 냄새를 맡았다. 처음 묵 무침에서 나길래 역시 김이 문제라고 여겼다. 배추 겉절이의 같은 맛으로 젓가락을 대지 못할 때까지.

■ 겉절이에는 김 가루가 들어가지 않는다. 막국수와 묵 무침과 겉절이의 공통점은 고춧가루뿐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한동안 방송에 자주 나온 곰팡이가 가득 슨 중국산 불량 고춧가루였다. 마른 고추를 여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이내 곰팡이가 난다.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도 좀처럼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끓이거나 삶으면 덜하지만 날로 버무리다간 낭패하기 십상이다. 불량 고춧가루가 고급 음식점까지 침투했으니 총 점검을 더는 늦출 때가 아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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