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정치권의 비판적 여론, 심지어 박근혜 당선인의 명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끝내 특별사면을 강행했다. 예상대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청와대 전 정무수석 등 측근들이 대거 포함됐다. 일부 친인척이 배제되고 사회갈등 해소차원에서 용산사건 관련자 등이 포함됐으나, 사면된 인물 면면의 비중으로 보아 종래의 비리사범 구제용 사면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법과 원칙에 따른 사면”이라는 이 대통령의 인식은 일반정서와는 크게 동떨어진 것이다.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사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언급은 더더욱 군색하다. 최 전 방통위원장의 경우 범법 시기가 대부분 2008년 임기 전이라고는 하나, 이미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화한 시기여서 재임 중 비리와 다를 바 없다.
또 처음으로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쳐 절차상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하지만, 사면심사위는 과반수 미만의 민간위원마저 법무장관이 위촉하도록 돼있고 심의회의록도 5년 내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객관성과 책임이 흐려질 소지가 크고, 절차적 정당성 확보용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명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제도개혁이다.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일반사면과는 달리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자칫 국가권력을 사적, 자의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사법권을 무력화하고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사면권이 횟수, 대상, 폭 등에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우리와 달리 대부분 정치선진국들이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다.
마침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대통령의 친족과 대통령이 임명한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특별사면과 감형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더해 형 선고나 복역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해야 대상이 되도록 하고, 정치ㆍ선거사범이나 부패 공직자, 권력형 비리사범, 반사회적 중범자 등은 사면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면심사위도 실질적인 기능을 하도록 독립적 지위를 갖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