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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긴급조치에 침묵은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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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긴급조치에 침묵은 직무유기"

입력
2013.01.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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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반헌법적이었던 긴급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3년 가까이 침묵하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습니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이 선고됐던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을 이끈 조영선(47ㆍ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동화 대표변호사는 27일 기자와 만나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결정을 미루고 있는 헌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010년 2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원들과 함께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장 선생의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것은 2009년 6월로, 무죄 판결까지 3년 반이 걸렸다. 1974년 장 선생과 함께 '개헌 100만인 선언'을 했던 백기완(81)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아직 재심 개시 결정도 못 받았다. 기약 없는 재심을 기다리다 고령과 지병으로 사망하는 이들도 하나둘씩 나오는 형편이다.

조 변호사는 학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이미 위헌성이 인정된 긴급조치에 대한 재심 결정이 늦어지는 근본 원인이 헌재에 있다고 보고 있다. 법원 개별 재판부가 재심 개시를 결정하는 지금과 달리,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모든 재심 청구가 일괄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법원도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인정한 마당에 헌재가 이를 미루는 것은 헌재 수뇌부의 정치적 부담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긴급조치 사건을 맡았던 이동흡 당시 헌재 재판관의 잦은 외유도 한몫을 했습니다. 헌재 연구관들은 이미 결정문 초안까지 써 놨다고 들었어요."

추락한 헌재의 위상도 무관하지 않다는 진단도 내놨다. "2010년 말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이라며 무효 판결하자, 헌재는 '관할권 침해'라며 발끈했습니다. 하지만 관할권 다툼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볼 일입니다. 헌재가 헌법정신과 가장 부합하지 않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대해 침묵하는 건 자신의 소명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최근 헌재 재판관이 검찰총장으로 나가려 하는 등 헌재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 변호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긴급조치 사범 중 최초로 재심 무죄가 선고된 오종상(72)씨 사건을 2008년 맡으면서부터다. "우연한 기회에 사건을 맡아 법 조문을 들여다보니, 유신헌법을 비판하면 영장 없이 체포해 징역 15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가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법조계 선배들은 대체 뭘 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습니다."

조 변호사는 현재 백기완 소장의 재심 청구를 비롯, 긴급조치 사건 10여건을 맡고 있다. "장준하 선생의 재심 무죄 소식을 들은 백 소장님이 웃으시며 '나는 뭐냐'고 하시더라구요. 헌재가 침묵하는 바람에 법원이 재판부별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일화입니다."

그는 이른바 '학출 노동자'(1980년대 공장으로 갔던 대학생 출신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였다. 성균관대 토목과 84학번인 그는 대학 1학년까지 다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전남 순천의 공단으로 가 5년 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가 뒤늦게 변호사 뱃지를 달았다. "현장에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항상 부채의식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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