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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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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림에 대하여

입력
2013.01.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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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의 비행기에 책을 한 권 두고 내렸다. 책 사이에는 미술관에서 산 엽서가 끼어 있었다. 입국장을 나와 짐을 정리할 즈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가 편명과 좌석번호를 알려주며 등받이 포켓을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내 자리 주변을 구석구석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활주로가 붐벼 이륙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그 책을 꺼내들었었다. 30페이지쯤 읽었지만 별로 재미가 없어서 등받이 포켓에 꽂아둔 걸 분명 기억한다. 잃어버렸다고 해서 중뿔나게 아쉬울 건 없었다. 집에 가지고 가 봤자 다시 펼쳐보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신간이었으니 손때와 필적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엽서의 경우도 굳이 집착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습관적으로 엽서를 사는 편이라 미술관의 숍에서 몇 장 집어들었을 뿐이고, 다행히 잃어버린 것 말고도 내 가방에는 두어 장이 더 있었다. 그러나 내 손에 있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왜 이렇게 애착이 가는 것일까. 바로 그 책을 꼭 찾고 싶고, 바로 그 엽서를 메모판에 붙여놓고 싶은 것일까. 엽서 속 어린 소년의 표정이 뒤늦게 가물거리는 것일까.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결국 그 책을 다시 주문했다. 우연히 끼어든 ‘잃어버림’이,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다시 펼쳐보지 않았을 책을 나로 하여금 지금 읽게 하고 있다. 나는 ‘잃음’을 읽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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