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이 없는데도 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아직도 아이를 괴롭힙니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알려줘야 피해자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 수 있을 겁니다."
학교폭력으로 학교까지 그만둔 자녀를 둔 한 학부모의 울먹임에 50명이 넘는 서울남부지법 법관들이 일순간 숙연해졌다. 소년사건 전담재판부 재판장인 주채광 판사는 "가해자의 10~20%만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할지 몰라도 그 소수를 위해 법원이 화해권고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
28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생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법원이라면 으레 법관들이 피고나 원고는 물론 검사나 방청객보다도 한단 높은 자리에 앉아 근엄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곳이다. 헌데 이날은 법관들이 눈높이가 똑같은 회의실에서 성폭력범죄와 학교폭력 문제 등에 대해 시민 목소리를 경청했다. 법관들끼리만 둘러 앉아 진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한 ‘시민과 함께하는 법관 간담회’ 자리였기 때문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 31명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법원의 세심한 배려 등을 촉구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난해 ‘원하지 않은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도 본인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피해자에게 용기를 준 한 재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법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피해자들에겐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시민패널로 참여한 서울시교육청 학부모 강사 이한다(44)씨는 “법관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들이 생겨 자주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양승태 대법원장도 간담회장을 깜짝 방문했다. 양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법원은 개별 분쟁 해결기관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기관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시민의 신뢰를 필요하고, 신뢰는 법관이 시민과 소통·교류·협력할 때 형성된다"고 격려했다. 성폭력범죄 재판에 대한 시민 의견을 들은 뒤에는 “증거조사를 위해 피해자 소환을 하면 2차 피해를 우려하지만 엄한 처벌을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불러야 할 상황이 있다”고 밝히며 아동이나 장애인 피해자 소환에 대한 사법부의 고민을 드러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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