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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에 10년간 음악선물 'DJ 버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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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에 10년간 음악선물 'DJ 버스기사'

입력
2013.01.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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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서울 신촌. 양천구 신월동과 서울역을 오가는 603번 시내버스안은 여느 버스와 180도 달랐다. 깔끔한 검정색 양복 차림에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쓴 버스기사 고창석(58)씨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그룹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한 외국인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멍한 표정이었던 다른 승객들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고씨를 쳐다본다. 고씨가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내리는 승객들은 “기사님 멋져요”라고 외치거나, 엄지를 치켜세운다.

고씨는 승객들에겐 꽤 알려져 있다. 가요와 팝송 5만3,000곡이 파일로 저장된 노트북을 버스에 싣고 다니면서 음악을 선물하는 DJ기 때문이다. 이번달로 ‘DJ 버스기사’ 10년이 되는 고씨는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승객들에게 만국 공통어인 음악과 따뜻한 이야기로 즐거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군 제대 후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상경해 인쇄소 속옷회사 등에서 일했으나 번번히 회사가 부도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그러다 1995년 9월 지인 소개로 버스운전을 시작했다. 입사 당시의 1,200만원 빚을 2년여 만에 다 갚을 만큼 성실히 일했던 그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기왕 일 할거면 즐겁게 하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음악을 틀고 다니다가 2003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DJ를 시작했지요. 지금까지 국내외 가수와 노래 정보를 모은 공책만 20권이 넘습니다.”

팝송과 가요가 흘러나오자 승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사편지를 건네거나, 손수 만든 과즙을 선물했다. 고씨가 운전하는 버스만 기다렸다 타는 손님이 있었으며, 순금으로 된 책갈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승객은 따로 있다. 3~4년 전쯤 서로에게 소리치며 버스에 탔던 부부다. “차비를 내 달라”는 부인의 말에 들은 척도 안 하는 남편을 본 고씨는 곧바로 사랑에 관한 음악을 틀었고, 이어 책에서 읽은 얘기를 풀어냈다. “‘부부는 약속으로 반쪽이 만난 인연이죠. 그래서 상대가 싫어도 잘 했다고 평가하고, 또 용서해야 사랑이 완성됩니다’라고 했더니 따로 앉아있던 남편이 부인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슬며시 손을 꼭 잡더라고요. 남편이 내릴 때 저에게 와서 ‘내일 이혼하러 법원에 가기로 했는데 느낀 점이 많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밥 한번 대접하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취향이 다른 탓에 DJ 버스기사에 대해 “시끄럽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승객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출근 시간대에는 뉴스가 나오는 라디오를 틀지요. 안전운행에 방해 되기 때문에 정류장이나 정지신호에 걸릴 때 등등 버스가 잠시 멈췄을 경우에만 멘트를 하고 음악을 틀고 있습니다.” 이런 ‘소신’ 덕분일까. 2001년 눈길에 버스가 미끄러져 접촉사고를 한 차례 냈을 뿐, 12년 버스운전하면서 사고를 낸 적이 없다. 고씨는 친절ㆍ안전 운전을 인정받아 2007년 7월부터는 매달 한 차례 서울시 교통연수원에서 신입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강의도 한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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