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으로 7년 간 33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극단 모시는사람들이 신작 '숙영낭자전을 읽다'(김정숙 작, 권호성 연출)를 내놨다.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24일부터 공연에 들어간 이 작품은 한국 옛전통인 송서(誦書ㆍ가락을 넣어서 노래하듯 책을 읽는 것)로 기본틀을 짠 연극이다. 송서뿐 아니라 판소리와 민요, 전통춤 등 한국적인 소리와 몸짓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바느질 하다가 부러진 바늘을 애도하는 '조침문', 가난한 처녀의 신세 한탄 노래인 허난설헌의 한시 '빈녀음'도 넣어 그 시대 여인들의 삶과 꿈을 그려낸다.
무대는 조선시대 규방이다. 등잔불 아래 여인들이 모여 곧 시집갈 아씨의 혼수로 옷을 짓느라 바쁘다. 바느질에 다림질에 허리 펼 새 없이 고단한 밤, 졸음을 쫓고 지루함도 덜 겸 아씨가 읽어주는 숙영낭자전을 들으면서 여인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꿈을 꾼다.
숙영낭자전은 러브스토리다. 천상 배필인 숙영낭자와 백선군이 뜨거운 연애 끝에 혼인해서 잘 살다가 주변의 오해와 모함으로 숙영낭자가 누명을 쓰고 자결하지만,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고 하늘이 목숨을 되살려주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송서를 듣는 극중 여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노처녀 막순이나 푼수데기 섭이네는 멋진 짝을 만난 숙영낭자가 부럽지만, 시집 가는 게 두려운 아씨는 여자가 시집 안 가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나 묻는다. 넉살 좋은 과부댁은 춘향가 중 사랑가로 흥을 내다가 내친 김에 남자들 거시기 흉내로 배꼽을 잡게 만든다. 저마다 처지에 따라 한 마디씩 하는 말과 몸짓이 다양해 보는 재미를 더하는데, 특히 과부댁을 맡은 배우 박지아는 소리도 잘 하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도 잘해 극을 살리는 데 단단히 제 몫을 한다.
색다른 형식으로 단정하게 연출한 작품이다. 숙영낭자의 자결 대목은 극중극으로 처리해 긴장감을 살리는 등 구성도 대체로 매끄러운 편이나, 마지막 장면인 한량무는 줄이는 게 좋겠다. 백선군 같은 멋진 선비를 만나 여한 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여인들의 로망을 표현한 것이겠으나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 공연은 2월 3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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