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건배사 만들기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건배사 만들기⑥

입력
2013.01.28 08:03
0 0

건배사는 대체로 40대 이상의 직장인들이나 퇴직한 세대가 많이 쓴다. 2030세대에서는 이런 말장난이 아니라도 즐기며 할 수 있는 놀이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나 소통, 화합 등을 다지면서 기존 네트워크를 유지 강화해야 할 필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건배사를 하는 모임을 통해 종전에 없던 네트워크를 새로 개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보면 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배사는 아주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나이야 가라!”다. 캐나다와 미국의 접경지대에 있는 나이아가라(Nigara) 폭포에 간 한국인들은 더 이상 늙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이렇게 외친다고 한다. 모임에서는 “나이야!”라고 한 사람이 외치면 참석자들이 “가라!” 하고 받는 식이다. 한국인들만이 외칠 수 있는 한국어 독점 구호다.

세월은 쏜살같이 빨라 어느덧 인생의 막바지가 다가오는데, 해놓은 일은 적고 자식 걱정 돈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노년들은 시린 마음을 건배사에 실어 한때나마 위안거리로 삼는다.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 일 앓다가 죽자), '구구팔팔일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만 앓고 사흘 만에 죽자), '당신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면서 살자), '빠삐따또'(모임에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또 만나자), '빠삐용'(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 이런 건배사에는 삶에 대한 긍정을 넘은 체념과 소망이 담겨 있다.

'세븐 업'(7UP)을 외치는 것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세븐 업은 클린 업(Clean up), 집과 주변을 깨끗이 하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릴 것, 드레스 업(Dress up), 구질구질하지 않게 단정히 하고 다닐 것, 샷 업(Shut up),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할 것, 쇼 업(Show up), 회의나 모임에 부지런히 나가고 새로운 사람을 자꾸 사귈 것, 치어 업(Cheer up), 언제나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할 것, 페이 업(Pay up), 돈이든 일이든 자기 몫을 다할 것, 입은 닫고 지갑은 열 것, 기브 업(Give up), 포기할 것에 미련을 갖지 말 것을 말한다. 이걸 '칠 업'이라고 읽는 노인도 있던데 제대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 일곱 가지를 다 하려면 건강과 돈이 꼭 있어야 하니 더 어렵다.

‘해당화’라는 건배사는 나이가 들면서 쇠약해지는 심신을 추스르기 위한 말이다. “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살자는 것이니 활기차고 건강한 생을 갈망하는 안간힘이 안쓰럽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부부간의 이해와 화합이 문제가 된다. 그 ‘해당화’를 “해가 갈수록 당신만 보면 화가 나!”라고 바꾸어 남편이나 아내를 놀리면 부부싸움이 나겠지? 실제로 우리나라 주부들은 남편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가진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젊은 시절에 남편은 일과 술에 빠져 하숙생처럼 살았고, 아내는 아이들 기르고 살림을 하면서 외롭게 가정을 지켜온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서운한 마음이 나이 들수록 적나라하게 표출된다. 그러니 해당화를 “해가 갈수록 당신과 함께 화려하게!”라고 말을 바꾸어 아부라도 하고 아껴주면서 살아야 한다.

‘여보당신’을 외쳐 부르면서. 이 말은 “여유 있고 보람차고 당당하고 신나게!”라는 뜻이라고 한다. “오해 말고(오해 대신) 이해하며 지겹지 않게!”, “오직 우리, 이 다음 세상까지, 지조 있게!” “오래 오래, 이 마음 그대로, 지금처럼!” “오래 오래, 이해하며, 지금처럼!” “오늘처럼, 이대로, 지겹지 않게!” 그렇게 서로에게 ‘오이지’가 되도록 하자. 그리하여 ‘오징어’, “오래오래 징그럽게 어울리자!” 이런 자세로 행복하게 살아갈 일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