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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이 마을 사랑방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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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이 마을 사랑방 됐어요"

입력
2013.01.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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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락방에 책꽂이까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리학교 도서관 최고에요."

지난달 11일 전북 익산시 오산초등학교 4학년 이은지(10)양은 새로 생긴 교내 도서관을 둘러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책을 보기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40여분 거리의 시립도서관까지 갔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 집에서 학교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데다, 3,000권이 넘는 도서 중엔 동화, 소설, 만화 등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이 많아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주민들도 마찬가지. 한 학부모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책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아 독서를 잊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가족끼리 자주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교생 87명의 오산초교에 도서관을 마련해 준 주인공은 다름아닌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이다. 사회복지법인 네이버문화재단을 통해 지난 2005년부터 12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공공도서관의 혜택이 미치지 않는 도서산간지역에 책을 지원하는 '우리학교마을도서관(학교마을도서관)' 사업을 진행했다. 그 해 12월 강원 정선군 예미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지난 8년 간 전교생이 100명도 채 안되는 학교만 골라 현재까지 239곳에 도서관을 지어주었고 기증한 도서는 총 80만권에 이른다.

오랜 기간 사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으로 공공도서관 확대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학교마을도서관이 공공재 역할을 일정부분 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지난해 10월 이 같은 성과를 담은 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남영준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주도로 전국 각 지역 학교마을도서관의 운영자와 주민, 학교장 등 400여명을 대상으로 이용패턴 등에 관해 설문조사를 벌이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문화재단이나 지자체 모두 막연하게 느끼던 사업 효과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 이번 조사는 분석결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학교마을도서관 설립 이전에는 지역 주민들이 인근 공공 도서관까지 이동하는데 걸어서 31.1분, 차를 타고선 20.7분이 걸렸다. 하지만 설립 후에는 도보로 14.7분, 차량으론 9.4분이 소요돼, 사실상 절반으로 단축됐다. 그만큼 도서관 이용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실제 해당 지역 주민들은 도서관 설립 후 책을 보는 장소로 상대적으로 먼 공공도서관(1.3%) 보다 학교마을도서관(28.8%)을 더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량 역시 도서관 설립 전 2.8권에서 설립 후 5.1권으로 약 1.8배 증가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도서관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책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공간에서 더 나아가 지역 주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는 곳으로 진화한 것이다. 실제 '도서관이 지역공동체의 문화구심점인가'를 5점 척도로 묻는 질문에 평균점수 3.79점이 나와 '만족(4점)'에 근접한 결과를 얻었다.

지난 2009년 문을 연 전북 진안군 동향학교 마을도서관은 매주 3회 '부엉이 도서관'을 운영, 다문화가정 주부와 노인들을 위해 한글 교실을 마련하며 활동폭을 넓혔다. 한 때 폐교 직전까지 갔던 제주 토산학교마을도서관 역시 주민들이 하교시간 이후 문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유의미한 성과를 토대로, 학교마을도서관 사업은 또 한번의 변신을 앞두고 있다. 오산초등학교 도서관을 기점으로 앞으로는 신규 개관 보다 기존 도서관들이 지역에 더욱 뿌리를 내리도록 자생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미 재단은 마을도서관 운영자인 교사와 주민들을 상대로 분기별 워크숍 및 온라인 교육 등을 통해 운용능력을 전수하고 있다. 도서관 운영자들도 이번 보고서를 통해 '도서관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주체'로 지역주민(22%), 학교장(17%), 지역교육청(15%) 등을 중앙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10%) 보다 우선 꼽았다. 오승환 문화재단 대표는 "지난 8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지역주민이 스스로 도서관을 활성화 시키는 단계까지 발전시키겠다"며 "이 사업을 통해 갈수록 심해지는 도시와 도서산간지역 간 정보 격차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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