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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계 변방의 목소리, 세계를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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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계 변방의 목소리, 세계를 울리다

입력
2013.01.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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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가 제주를 소재로 제주에서 만든 영화 '지슬'이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영화제를 뒤흔들었다. 선댄스영화제는 1985년 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재능 있는 국내외 독립영화인들을 발굴하고 후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짐 자무시, 코엔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등 유명 감독을 세상에 알리며 명성을 얻어 왔다. 매년 1월 스키리조트로 유명한 유타 주 파크시티에서 열리며 국내와 해외로 나눠 각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에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여한다.

한국영화가 선댄스영화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지슬'이 처음이다. '여자, 정혜'(이윤기 감독), '피터팬의 공식'(조창호),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김태식), '채식주의자'(임우성), '녹색의자'(박철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이충렬) 등이 꾸준히 월드시네마 경쟁 부문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지슬'의 1948년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주민들을 위무하는 영화다. 영문도 모른 채 사살을 명령 받은 군인들과 자신들이 처한 위험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주민들의 대치 상황을 그린다. 흑백 화면으로 아름다운 제주 풍광의 색채를 지운 영화는 제주 방언으로 가득한 유머와 해학을 담아 역설적인 슬픔을 극대화한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시각적으로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면서 "카메라의 오래 찍기와 느린 움직임이 불러 일으키는 깊은 슬픔이 신비롭고 진혼곡 같은 영화음악에 의해 심화된다"고 평했다.

'지슬'은 독립영화계에서도 변방인 제주 지역의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오멸 감독은 문화 예술 창작집단 '자파리연구소'를 이끌며 제주 지역의 색채가 짙게 배어나는 영화들을 연출했다. '지슬'은 그의 네 번째 영화로 4ㆍ3사건을 다룬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2005)의 뜻을 이어받았다. '지슬'에 '끝나지 않은 세월 2'이라는 부제가 붙고, 제작총지휘로 김 감독의 이름이 올라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제주라는 영화 변방에서 독립군처럼 영화를 만들어온 무명 감독이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과 달리 독립영화 정신을 최고로 치는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이전의 국제영화제 수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쾌거"라고 치켜세웠다.

'지슬'의 제작비는 약 2억 5,000만원. 그간 1,000만원도 안 되는 초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에겐 큰 돈이다. 감독은 제주영상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에 누리꾼들의 후원을 보태 어렵게 완성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최초로 소개된 이 영화는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CGV무비꼴라쥬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올 초엔 한국독립영화협회로부터 '2012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지슬'은 23일 네덜란드에서 개막한 42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스펙트럼 부문에 이어 2월 5일부터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장편영화 경쟁부문에도 진출해 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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