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간 세계 바둑계에 황사돌풍이 거셌다. 특히 '90후 세대'라 불리는 중국의 신예강자들이 각종 세계대회서 맹위를 떨쳐 상대적으로 한국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데 올해도 이같은 중국의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연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교류전에 출전한 한국의 젊은 강자들이 중국 선수들과의 맞대결에서 또 한 발 밀렸기 때문이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중국기원에서 벌어진 2013 교류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중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155승 197패를 거둬 승률 44%에 그쳤다.
이번 대회에 한국은 랭킹 2위 박정환을 비롯해 조한승, 강동윤, 이영구 등 10위권 이내의 강자들과 이동훈, 변상일, 나현, 최정, 오유진 및 지난해 7월 입단한 막내 신민준, 신진서까지 젊은 남녀기사 44명이 대거 출전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9명이 참가했던 지난해 한중 교류전에서도 한국은 121승140패로 승률 46%에 그쳤다.
한국 선수 중에선 한상훈과 여자 신예 최정, 김채영이 나란히 7승1패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상훈은 6라운드까지 전승을 달리다 7라운드에서 탄샤오에게 졌지만 마지막 8라운드에서 리쉔하오를 꺾고 7승1패로 마무리했다. 국내 여자 바둑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최정은 리허, 송롱후이, 탕이, 왕천싱 등 중국 정상급 여자기사들을 잇달아 물리쳤다. 이번 대회에 한국 여자선수가 8명 참가했는데 중국 여자선수와의 맞대결에서 29승28패를 기록했다.
이밖에 김정현, 이태현이 6승2패로 돋보였다. 1995년 이후에 출생한 기사 중에선 이동훈, 신진서가 5승3패를 거둬 경험을 더 쌓는다면 세계대회에서 충분히 한 몫 할 가능성을 보였다. 관심을 모았던 '95후 세대'의 맞대결에서도 17승18패로 대등한 승부를 벌였다.
반면 상위권 기사들은 뜻밖에 부진했다. 박정환(2위)과 조한승(5위), 강동윤(8위)이 각각 4승4패에 그쳤다. 박정환, 조한승은 초반에 4연승을 거뒀지만 체력 탓인지 후반 4국에서 잇달아 패했다. 이밖에 이지현(14위) 나현(15위) 변상일(18위)이 각각 4승4패, 안성준(19위) 3승5패, 이영구(11위) 목진석(20위)은 각각 2승6패에 머물렀다.
국내 랭킹 20위권 9명의 총전적이 31승41패(승률 43.1%)이고, 30위권 14명의 전적은 48승64패(승률 42.9%)로 한국 선수단 전체 승률보다도 못하다. 양국 랭킹 30위 안에 드는 선수끼리 맞대결에선 18승31패(36.7%)로 더욱 저조했다. 한 마디로 국내 랭킹 30위권 이내 강자들이 모두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중국은 다음 달에 원성진과 LG배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스웨의 선전이 돋보였다. 다섯 번 나와 전승을 거뒀다. 박정환에게도 이겼다. 속기에 강한 탄샤오와 '95후 세대' 양딩신이 5승1패, 여자 신예 위즈윙이 6승1패를 거둬 주목을 받았다.
한중 교류전은 연초 휴식기간을 이용해 열리는 비공식 대회지만 양국의 젊은 기사들이 서로 상대의 기량을 비교,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갈수록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 이번 대회에 한국 기사들은 1인당 110만원의 자비를 들여 참가해 1인당 8판씩 대국을 가졌다. 비공식전이라 별도의 상금은 주어지지 않지만 재미 삼아 선수들끼리 판당 100위안(약 1만8,000원)의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이번 교류전에서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부진한 데는 원정 경기로 인한 음식과 숙박 문제, 빡빡한 일정에 따른 체력 저하, 많은 선수들의 공동생활에 따른 컨디션 관리의 애로점 등 여러 가지 불리한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선수들은 하루 두 판씩 4일 간 계속 쉬지 않고 대국을 한 반면 중국 선수들은 총 88명이 참가해 1인당 3, 4판정도 밖에 두지 않았으므로 상대적으로 체력소모가 컸다. 실제로 한국은 첫 날과 둘째 날보다 셋째 날과 넷째 날 성적이 나빴다. 또 한국은 전원 본인 희망에 따라 출전했지만 중국은 국가대표팀 중에서도 정예기사들이 출전했기 때문이라는 자위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한편 베이징에서 1차 교류전을 마친 후 박승화, 김세동, 안국현, 변상일, 이동훈, 신민준, 신진서 등 중국원정대 가운데 비교적 나이 어린 기사 17명은 밤기차를 타고 항저우로 이동, 국가대표 2팀과 2차 교류전을 가졌다. 국가대표 2팀은 주로 을조 리그 소속 선수들로 지난해 10월 40명이 선발돼 현재 항저우기원에서 훈련 중이다.
19일 아침에 항저우에 도착한 이들은 휴식 없이 점심 식사 후 바로 대국을 시작했다. 23일까지 닷새 동안 1인당 13판씩 대국을 하는 강행군 끝에 류민형과 이동훈이 나란히 10승3패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고 이태현이 9승4패, 막내인 신진서가 7승5패, 신민준은 6승6패를 거뒀다. 17명 전체 성적은 112승97패(승률 54%)였다. 베이징에서 이들 17명이 거둔 성적(60승76패)과 비교하면 대단히 선전한 셈이다. 그만큼 국가대표팀과 국가2팀의 기량 차이가 크다는 얘기도 된다.
한국 선수들을 이끌고 출전한 김성룡 9단은 "승률이 50%가 안 되지만 원정경기라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니다"며 " 오히려 전혀 강제성이 없는 해외 전지훈련에 이처럼 많은 젊은 기사들이 자비 부담을 감수하며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에서 한국 바둑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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