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서 부상해 전역한 해군 대위 출신의 존 포브스 케리가 1971년 4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증언대에 섰다. 메콩강 하류에서 초계정을 타고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했던 그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반전 주장을 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한 사람이 베트남에서, 실수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외치며 즉각 철군을 요구했다.
42년 뒤 이번에는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를 위해 같은 자리에 섰다. 베트남전 당시 다리와 팔에 박힌 총알 파편이 아직 남아 있는 케리였다. 24일(현지시간) 인준 청문회에서 케리 국무장관 지명자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구체적 언급은 되도록 피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대립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국제주의자의 면모는 여전했다.
그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자신이 주도한 미국-베트남 관계 정상화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평가했다. 이란 핵 개발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책은 봉쇄가 아니다"면서 "이란의 약속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외교력을 동원할 것이며 이란이 우리의 의지를 오인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케리의 국무장관 지명을, 반전을 뜻하는 '베트남 신드롬의 귀환'으로 평가한 그대로였다.
케리의 이란 접근 방식은 향후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케리가 이날 북한 핵을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10년 7월 버락 오바마 1기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에 대해 "이것이 전략적 무관심이 돼선 안되며 적극적 관여정책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력 회의론자인 케리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심 전략'의 한 축인 군사력 증강에 부정적인 생각을 비쳤다. 그는 "아시아 군사력 강화가 중요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포위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에 맞춰 아시아에 군사력 재배치를 추진해왔다. 케리는 중국 문제에 대해 "경제 현안에서 견해 차가 크지만 북한, 기후변화 등의 문제에서 공조가 필요하다"며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케리는 "외교는 경제"라며 달라진 모습도 보여주었다. 케리는 "외교 정책은 과거보다 더욱 경제 정책"이라면서 "세계가 자원과 시장을 놓고 경쟁하지만 미국이 승리하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의 소망은 당의 노선과 당파적 갈등을 초월해 경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지원을 호소했다. 케리는 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국내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거나 "외교관으로서 나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최우선 과제 역시 국내 재정 정상화"라는 말로 미국 리더십이 경제에 의존하고 있음을 역설했다.
케리는 미국 외교 현안의 하나인 인권을 말하면서 북한 정치수용소의 수감자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케리는 28, 29일 진행될 인준 투표를 무난히 통과하면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오바마 2기 국무장관에 취임한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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