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의 작은 산골마을 고길리의 보건소는 조금 특별하다. 여느 보건소와는 달리 여성 보건소장이 마을의 어머니, 할머니들에게 열심히 ‘춤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특유의 추운 날씨로 인해 운동부족으로 건강이 취약해지기 쉬운 겨울철 농한기에 마을에 사는 부녀들을 대상으로 건강증진교육 차원에서 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면서 움직임을 유도하고 노래까지 따라 부르다 보니 웬만한 운동 못지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쯤 되면 무용인지 체육인지를 굳이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를 위해 보건소장은 청춘가, 해뜰 날, 뱃노래, 칠리차차 등 음악도 직접 고른다. 그리고 안무를 짜서 본인이 한번 해본 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율동으로 만들고 함께 연습을 한다. 그리고 기왕에 춤추러 다 같이 모인 김에 자연스레 혈압과 혈당도 체크하고 금연, 절주 등 질병예방이나 관리에 대한 보건교육을 실시한다. 건강교육 받으러 오라면 어려워하실 분들이 이렇게 함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어디 아프고 다치면 약타고 응급처치 하러 가는 곳으로만 알았던 보건소는 이제 마을의 문화공간이자 여가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본인들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활동도 많아졌다. 읍내의 의료원 주최 행사에 작은 발표회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최근엔 아예 유니폼까지 맞추고 본격적으로 공연도 하게 되었다. 봄마다 열리는 마을축제 ‘감자꽃봄소풍’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축제를 찾은 수많은 방문객과 관광객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축제장의 흥을 돋아 운동장 객석을 휘어잡는다. 크리스마스에는 보건소와 인접한 다섯 개 마을의 주민들이 각자 준비한 공연으로 만드는 ‘성탄극장’에서 늘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지역의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시니 재능기부나 봉사가 따로 없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려 보겠냐며 즐거우시다.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즐기실 나이에 오히려 손자뻘 되는 아이들 앞에서 능숙하게 춤솜씨를 보여주시니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은 늙으신 어머니의 춤바람에 열렬히 박수를 보낸다. 멀리 타국에서 시집와 고된 농촌생활에 힘든 외국인 며느리도 이 일만큼은 신난다. 억지로 배우는 어려운 한국무용이 아니라 신나고 금방 즐길 수 있는 춤이라 재미있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러 춤추러 나간다니 무슨 진짜 춤바람 난 줄 알고 기겁을 하고 ?아왔던 신랑의 표정이 선한 데 이제는 당당하여 거리낄게 없다.
이런 활동으로 마을 부녀들에게 조용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감지된다. 수다와 고스톱이 다 일수 있는 이들의 여가는 훨씬 활기차고 즐거워졌다. 할머니들 좋으라고 한 일인데 뜻밖에 며느리들이 더 좋아한다는데 알고 보니 춤추는 시어머니는 잔소리가 훨씬 줄었다고 반색이다. 나이가 들면서 다소 우울해 하던 분들도 기운을 차리시고 일상이 훨씬 밝아졌다 한다. 전에는 마을의 중요한 회의가 있어도 이장과 남자 어른들이 말하는 거 조용히 지켜보면서 밥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 하는 게 다였던 어머니 할머니들이 이제는 마을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동참한다.
문화적 혜택이나 예술의 향유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던 농촌에서도 문화예술을 통해 새로운 활기를 찾고 공동체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꼭 유명한 예술가가 살지 않아도, 번듯한 시설이나 기자재가 부족해도, 그리고 큰 지원이 없어도, 마을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문화를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어디서나 문화적인 활동은 여성이 더 적극적이고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농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춤바람이라면 널리널리 퍼져도 문제될 게 없을 듯하다.
이선철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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