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금융부처는 현행대로 유지될 모양이다. 하지만 곧이어 발표될 상세 로드맵에는 감독개편이 어떻게든 다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병세가 그만큼 깊고 위중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크고 작은 위기를 모두 세 번 경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가 함께 겪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2003년 신용카드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사태는 둘 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왜곡 탓에 초래되었다.
잠시 5년 전을 되짚어보자.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둔 2008년 초, 당시 인수위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금융정책(규제완화 위주의 금융산업정책)을 떼어내 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로 이관했다. 이는 금융위를 감독당국이기에 앞서 ‘규제개혁기관’이라 간주한 일부 인수위원의 아집이 빚어낸 구조적 왜곡이었다. 감독당국의 본업(감독)이 뒷전으로 밀려났으니, 뭔가 크게 잘못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과거 재경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정책을 펼치던 시절에도 그 등쌀에 감독당국이 제구실을 못해 카드사태를 부르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2011년 벽두부터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 금융위가 부실 저축은행의 인수합병을 장려하는 등 규제완화(규제유예)를 통해 부실 누적을 수년간 방치한 결과였다. 반면, 제대로 된 건전성 감독은 거의 없었다. 여기엔 감독구조의 해묵은 왜곡도 한몫했다. 예나 지금이나 감독당국은 머리와 몸통이 금융위(정부)와 금융감독원(공법인)으로 나뉘어져 있어, 유사시 책임을 가리기 어려운 구조다.
부실 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쓰러지자 후순위채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보호감독 부실이 우리 사회에 크게 부각되었다. 글로벌 위기 이후 소비자보호 강화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소비자보호에 초점을 맞춰 감독개편 논의가 전개되었다. 금감원에서 소비자보호를 떼어내 별도의 소비자보호감독원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와 있다. 이것이 올바른 해법일까.
소비자보호 강화의 기치는 백번 옳지만, 이미 드러난 구조적 왜곡을 덮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축은행사태는 금융위의 건전성감독 실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독구조의 왜곡은커녕 그동안의 감독실패에 대해서조차 관련 당국의 진솔한 논의는 전혀 없다. 소비자보호감독과 건전성감독은 상호보완적이라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쪽을 대신해주진 못한다. 사실, 소비자보호를 내세우며 금감원을 보란 듯이 둘로 쪼개자는 정부 일각의 발상은 개편을 위한 개편을 하자는 것에 가깝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금감원 분할이 과연 소비자보호를 위한 처방인지가 확실치 않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 감독을 단일 감독당국이 모두 맡든(통합감독), 두 감독당국이 각기 하나씩 나눠 맡든(쌍봉감독), 소비자보호의 성과에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다는 것이 세계은행, 금융안정위원회(FSB)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연구결과이다. 또한, 비용도 문제다. 쌍봉감독을 추진 중인 영국의 건전성감독원(PRA)ㆍ소비자보호감독원(FCA) 간 양해각서 초안을 보면, 평소 둘 사이에 업무 전반에 걸쳐 긴밀한 조정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쌍봉감독의 운영에 적지 않은 자원이 상시적으로 추가 소요된다는 뜻이다. 쌍봉감독으로의 이행에도 커다란 사회적 비용이 수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요컨대, 진정 소비자보호를 지향하는 정부라면 국민의 선호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다. 이때, ‘누가 금융소비자이며 이들을 어느 정도로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와 ‘비용부담’의 문제를 한데 묶어 복수의 대안을 명쾌하게 제시한 후 여론을 공개 수렴해야 한다. 온 국민의 비용부담이 걸린 소비자보호 어젠더를 몇몇 관료나 정치인이 밀실에서 독점적으로 재단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통합감독이냐 쌍봉감독이냐는 그 다음에 따질 문제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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