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자신들의 지적 뿌리인 그리스 사상을 복원한 것은 이슬람 세계 덕분이다.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산산이 흩어져 자취를 감췄던 그리스어 원전을 이슬람 학자들이 번역해 유럽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8~10세기 아랍의 압바스 왕조(750~1258)에서 벌어졌던 그리스어-아라비아어 번역운동의 결실이다.
은 압바스 왕조의 번역운동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이슬람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한 책이다. 저자인 디미트리 구타스 예일대 교수는 그리스와 아랍 간 지식의 전파와 수용에 관해 연구해 온 세계적 학자다.
저자에 따르면 압바스 왕조의 번역운동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적 역사적 현상이다. 비잔틴 제국 동부와 근동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그리스어 책들이 이 때 번역됐다. 지배층과 사회 전체가 이를 지원했고 자금을 댔다. 칼리프의 명으로 여기에 참여한 수많은 학자들은 엄격한 학문적 방법론과 문헌학적 정확성으로 번역의 질을 높임으로써 아라비아어의 표준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압바스 왕조는 지성의 제국을 이룩했다.
저자는 압바스 왕조의 번역운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15,16세기 과학혁명에 맞먹는 위대한 성취라고 평가한다. 아랍권에서 그리스어 번역은 압바스 왕조 이전에도 있었지만, 압바스 왕조의 번역운동은 통치상 필요를 넘어 학문적 관심을 갖고 나섰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문 앞에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실었다. "제국 때문에 모든 문화는 서로 관련돼 있으며, 어떤 것도 순수하게 단독인 것은 없다." 그렇게 서로 통하고 섞여든 지성의 제국을, 그리스-아랍 간 지식의 전파와 수용 과정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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