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과장급 공무원은 기자들 앞에서 불편한 세종시 생활에 대한 원망을 직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돌렸다. 정부 부처가 이곳으로 옮겨오는데 당선인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 과장의 볼멘소리대로 박 당선인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 당시 정부에 맞서 행정부처 이전을 골자로 한 원안을 강력 지지했다. 하지만 세종시가 을씨년스러운 출발을 하게 된 책임의 더 많은 부분은 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 더 우세하다.
2009년부터 세종시 계획 수정에 대한 운을 띄우기 시작하던 이명박 정부는 이듬해 1월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내놨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닌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세종시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수정안은 행정부처 이전을 골자로 한 '원안'을 백지화하고, 삼성ㆍ한화 등 대기업과 교육기관 유치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2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행정도시특별법)을 부결시켰다. 투표에 참여한 275명 중 수정안에 반대한 의원은 164명. 이 중에는 친박계 여당의원 40여명도 포함됐다.
당초 계획보다 착공이 2년 가까이 늦어진 상태에서 원안대로 추진하도록 결정되자 국토해양부는 공사기간을 최대한 줄여 청사 완공 목표를 맞춘다고 방침을 세웠다. 현재 완공된 1단계 청사는 2010년 10월에야 첫 삽을 떴다. 원안대로라면 2008년 12월에 착공했어야 했던 건물들이다. 기반시설이 구축되지 않은 터라 2009년으로 계획됐던 첫 마을 아파트 단지 분양도 1년 늦춰졌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착공이 늦어진 만큼 완공시기도 늦춰 기반이 어느 정도 조성된 다음 정부부처 이전을 시작해야 했으나, 정부는 수정안 부결 후 세종시 건설 계획 수정 필요성을 외면하고 예정대로 정부이전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국토부, 기획재정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부처는 황량한 세종시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목표대로 정부 부처 이전계획은 맞췄지만 공사 지연에 따른 기반 시설 부족 문제까진 해결하지 못했다. 재정부 한 공무원은 "정부정책에 따라 이주하긴 했지만 아무런 정주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아 외딴 섬에 고립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사가 지연됐으면 기반 시설 구축 때까지 입주를 미루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지금과 같은 세종시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도 "충청권 표를 의식한 현 정부가 대선 직전에 기본 인프라조차 없는 세종시에 졸속으로 부처 이전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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