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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으로말하는 '詩 쓰기란…' "타인의 아우라를 찾아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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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으로말하는 '詩 쓰기란…' "타인의 아우라를 찾아 사랑하는 것"

입력
2013.01.2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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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엎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서로를 볼 수 없을 만큼 꽉 껴안은 연인을 그린 김행숙의 시 '포옹'이다. 1연에서 나와 너로 만난 주인공들은 2연에서 '볼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안고 '우리'가 된다. 이들은 포옹, 키스 같은 찰나의 감각을 통해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을 발견한다. 사랑의 순간을 담은 이 시를 비롯해 김행숙 시인은 새로운 감각과 형식을 시도한 작품으로 문단에 주목을 받아왔다.

신작은 이런 특징을 산문으로 풀어낸 작품집이다. 3권의 시집에서 선보인 저자의 관심사가 자신의 경험담과 시 비평을 통해 환기된다. 우리 시대 시의 의미, 글쓰기와 삶의 관계를 고민한 1부, 김수영 허수경 문태준 한국시인들의 시를 비평한 2,3부, 김수영 김혜순 김춘수의 시인론을 쓴 4부로 구성됐다.

제목이 신작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저자에게 시 쓰기는 타인의 고고한 분위기(아우라)를 발견하는 것, 타인에 대한 사랑(에로스)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동료들의 시집과 대화를 통해 '타인과 소통'이란 자신의 주제의식을 발전시킨다.

예컨대 최근 심보선 시인의 문학적 관심사를 '타인의 친밀성을 일깨우는 것'이라 소개하며 그의 대표작 '인중을 긁적이며'를 풀이한다. "시인이 이 시에서 윤회의 상상력에 매혹되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 안에 타인들이 비밀처럼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 달리 말하면 심보선은 나라는 주체를 다시 상상함으로써 타인들을 안으로 불러들인다."

저자는 허수경의 시 '그 그림 속에서' '혼자 가는 먼 집'을 풀이하며 '사랑은 타자성을 안전하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맨살에 가장 가까이 가는 모험 속에서 내게 포획되지 않는 부재로서의 당신을 하염없이 불러내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문태준의 시 '강을 따라 돌아왔다'는 '무한을 환기하는, 돌아오고 돌아오는 타인의 시간을 시적 '순간' 속에 반짝이게 하는' 시다. 김수영의 시 '사랑의 변주곡'은 '나와 너 두 사람의 관계가 나를 사로잡고 흔들며 시험하고 재발명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의 시처럼 산문 역시 기승전결의 논리적 구성없이 단절과 도약이 넘나드는 형식으로 쓰였다. 글의 재료는 고급이고 외장은 우아하며 만듦새는 감각적이다. 오랜만에 보는 품격 있는 산문집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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