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의 죽음을 부른 '그 일' 밝히지 않고 추리소설식 전개지난해 "절필" 선언 이전 인터넷 연재한 소설 펴내
성경에는 신이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창세기 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에게는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아브라함은 신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먹지만 아내 사라에게 이 결정을 말하지 못한다. 아내라도 남편의 이 미친 결정을 이해하진 못할테니까.
아비가 자식을 죽여 믿음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때로 인간이 법이나 도덕을 거스르면서도 제 방식의 윤리를 실현하려는 것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미친 결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가 안나 카레리나나 보바리 부인의 사랑을 막장 드라마 속 불륜과 구별 짓는 것은 바로 저 미친 결정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장면 때문이다.
소설 속 가족은 나름의 방식으로 불행한 가족이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민형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인류학과에 입학해 방탕한 대학생활을 하다 아버지 출판사의 편집자로 취직한다. '사람보다 책을 좋아하는' 민형은 유능한 편집장으로 성장하지만, 술로 몸을 망가뜨리며 여전히 방황 중이다. 학창시절, 입양한 동생 영미를 눈에 띄게 차별했던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모자(母子)사이가 서먹했고, 2006년의 '그 일' 이후로는 아예 의절하다시피 살고 있다. 아들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민경화는 아들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의 자식 차별을 방관했던 아버지 진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도 관성적으로 지나간다. 부모는 '그 일'을 알면서도 아들과 결혼하기로 결심한 며느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앞서 경화의 절친한 친구 딸인 영미는 부모가 사고로 죽자 경화의 집에 입양됐다. 집안청소는 물론 동갑내기인 민주의 속옷까지 빨며 학창시절을 보낸 영미에게 이 가족은 그저 법적으로만 가족일 뿐이다. 민형과 민형의 누나인 민희는 영미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영미는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후 고위공무원이 된다. 민희와 민형, 영미는 같은 대학 선후배로 영미가 집을 떠난 후에도 만남을 지속한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민형을 중심으로 부모와 아내 현주, 두 누이동생(민주, 영미), 민주의 애인인 정석, 장모, 딸의 목소리를 차례로 들려주며 가족의 불행을 각자의 입장에서 재현한다. 남들처럼 평화롭게 살던 이들 가족에게 2006년의 그 일은 되돌리지 못할 상처가 되고, 민희는 목숨을 끊는다. 2006년의 그 일을 무엇일까. 왜 민희는 목숨을 끊고, 민형은 근사한 삶을 포기한 걸까. 민희를 좋아했던 정석은 어떻게 민주의 애인이 된 걸까.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는 이야기는 작품 마지막 죽은 민희의 일기와 유서를 통해 2006년의 '그 일'과 그 일 앞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가 택한 '미친 결정'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지난해 9월 "내가 쓴 글과 책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절필을 선언한 저자가 절필 전인 2011년 7월부터 9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한, 어쩌면 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설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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