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60명 가까이 살았는데, 지금은 10명 남짓이에요."
백모(46)씨는 대를 이어 20년째 서울 중구 동국대 부근에서 하숙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학생 수가 급감해 죽을 맛이다. 곧 신학기가 시작되지만 방 25개 중 15개가 비어있다.
그는 몇 년 전 원룸 붐이 일면서 학생들이 빠져나가자 그간 모은 돈으로 하숙집을 증축해 일부를 원룸으로 개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대학에 초현대식 기숙사(700실 규모)가 생기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원룸을 일반인 월세로 돌리고 씀씀이를 아무리 줄여도 수입은 60% 가까이 줄어든 상태다.
24일 부동산업체에 따르면 동국대 주변 40개가 넘던 20명 규모 하숙집은 이제 10개도 안 남았다. 대출 받아 원룸으로 개조한 하숙집들의 공실률은 최대 60%에 달하기도 한다. 빚을 내 지은 새 원룸건물이 텅텅 비어 이자 감당조차 못하는 집주인도 허다하다. 하숙집 주인 김모(64)씨는 "불과 1~2년 전만 해도 30명이 머물던 집에 3명만 남았으니 늘 적자"라고 했다. 백씨 또한 "대학생임대주택도 생긴다니 걱정이다. 아는 게 하숙밖에 없는데, 접고 건물을 팔려 해도 시세가 너무 떨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들이 밀집한 서울 신촌에서 원룸 임대업을 하는 김모(37)씨도 방 30개 중 10개가 비어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다반사고,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달도 있다. 그는 "2010년 개업할 때만 해도 다 찼는데, 주변에 원룸이 원체 많이 생긴데다 기숙사 신설, 연세대 송도캠퍼스 신축에 정부 지원까지 겹치면서 지금은 찾는 학생도 없다"고 했다.
대학가 하숙집에 대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하숙집 구하기가 대학입시보다 어렵다던 '하숙집 대란'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정작 하숙집 주인들은 대학생 모시기가 힘들다고 하소연이다. 서울 시내 대학가엔 공실률이 50~60%를 넘는 하숙집도 많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구식 생활공간에 대한 거부감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욕구, 식생활 변화 등이 심리적 요소(원룸으로 이동)라면 대학들의 기숙사 신축 열기, 반값 등록금으로 촉발된 각종 주거지원대책 등이 경제적 요인(상대적으로 싼 값)이다.
한양대생 한모(23)씨는 "시설이 낡고 화장실도 공용인데다 밥 시간도 맞춰야 하는 하숙집보다 원룸에 사는 게 편하다"고 했다. 운 좋게 하숙비의 절반 수준인 기숙사로 옮겨가는 학생들도 있다. 때문에 하숙집들은 생존을 위해 원룸으로 개조하거나 직장인을 식구로 받아들이는 등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그렇다고 원룸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궁지에 몰린 하숙집들이 너도나도 원룸 개조에 나서면서 대학가 원룸은 공급 과잉 상태다. 부동산업체에 따르면 신촌 일대 원룸은 공실률이 10~15%에 달한다. A공인중개사 김모(53) 소장은 "전체 원룸의 20~30%는 깡통(팔더라도 대출금이나 보증금을 다 갚지 못하는) 원룸"이라고 귀띔했다.
더구나 원룸 수익률마저 떨어지고 있다. 대학가 원룸을 포함한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지난해 초 흔히 수익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6%대가 무너졌다. 원룸 숫자 역시 1년 새 5,000개 이상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중앙대, 동국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대학들의 기숙사 신축 바람도 거세다.
사정이 이런데도 하숙집 주인들은 원룸 개조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을 받지 못하면 직장인 상대로라도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대학가엔 원룸 증축 현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부동산업계에선 "이미 대학가 원룸 시장은 포화상태라 현재 짓고 있는 원룸들이 폭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숙집 주인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서운함도 내비쳤다. 한 하숙집 주인은 "최근 정부가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신청(23일 마감)을 받은 걸로 아는데, 사실 대학가 주변엔 해당되는 집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현금을 지급하면 학생들도 편하고 우리 같은 자영업자도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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