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협력 차원의 배려였다."
23일 과거처럼 차기 정부의 인권 과제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한 즉시 발표하지 않고 6일째 발표를 미루고 있는 이유를 묻자 국가인권위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인수위가 내용을 미리 검토하고 발표 시점까지 논의하자는 건 지나친 간섭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인권위의 제안을 잘 검토해보겠다는 배려로 느껴졌다"며 인수위를 싸고돌기도 했다. 강압적인 수준도 아니었다는 말도 했다.
원만한 협조차원이라던 인권위는 '인수위 눈치보기'라는 내용의 본보 기사가 나간 24일 부랴부랴 차기 정부 인권과제를 공개했다. 사실 인권위는 차기 정부 인권과제를 여러 차례 내부 논의를 한 끝에 지난 14일 확정했다. 이를 장시간 묵히고 있었던 것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지난 16, 17대 인수위에는 차기 정부 인권과제를 확정해 전달하는 즉시 내용을 공개했다. 사실 이러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은 인수위와 조율할 대상도 아니다. 인권과제를 미리 보겠다는 인수위도 문제지만 이를 받아들인 인권위는 더 문제다. 내부적으로 확정한 안이 외부의 입김에 흔들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그 성격상 정부 내에서 야당의 역할, 견제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인권위의 결정사항을 놓고 차기 정부와 부딪칠 일도 많다. 그러니 벌써부터 굽히고 들어간 인권위의 자세는 독립성 훼손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 인권 지표로서 때로 정부와 불편한 의제를 공유하고 반대되는 의견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게 인권위의 위상이자 존재이유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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