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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 한 사발로 철거민에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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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 한 사발로 철거민에 웃음을"

입력
2013.01.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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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추운데 뜨끈한 국수 한 사발 해. 팔팔 끓인 물 부었으니까 조심하고."

24일 점심시간 무렵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서흥순(51ㆍ여)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 컵면을 단무지와 함께 건네며 말했다. 천막 안에서는 이미 10여 명이 입김을 불어가며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성별과 연령대는 제 각각이지만 이들은 모두 등에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가 쓰인 빨간색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천막 한 켠에는 기부금 마련을 위한 쌀국수 컵면 300여 개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쌀국수 판매가격은 3,000원. 라경환(52) 전철협 총무는 "지난해 강제철거 당한 뒤 노숙 중인 마포구 염리ㆍ공덕동 철거민을 돕기 위한 행사"라고 말했다.

빨간색 조끼가 전국의 철거 현장을 누빈 지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올해로 창립 20돌을 맞은 전철협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염리ㆍ공덕 철거민 돕기 우리 쌀국수 만찬'이란 이름으로 특별한 20년을 알렸다.

전철협은 개발만이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1993년 철거민들의 권익보호를 외치며 출범했다. 1986년 조직된 서울시철거민협의회와 1990년대 초 잇따라 생긴 부산ㆍ경기도철거민협의회가 뭉쳐 전국조직으로 거듭났다. 이후 폭력투쟁보다 온건주의를 표방하는 철거민단체로 자리잡았다.

20주년 행사의 하나를 염리ㆍ공덕동 재개발지역으로 잡은 데는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간 주도로 재개발이 추진 중인 염리ㆍ공덕동에는 지난해 11월 19일 강제철거를 당한 주민 13명이 떠나지 못하고 천막에서 두 달 넘게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주보상금 현실화를 요구하며 끝까지 버티기로 마음 먹은 이들이다.

서씨도 그 중 한 명이다. 2006년 7월 염리동에 82㎡ 크기 호프집을 연 서씨는 1억원을 들여 내부 수리를 했지만 조합 측은 이주보상금으로 2,700만원을 제시했다. 서씨는 "하도 막막해서 싸우게 됐다"고 말했다. 한우등심 고깃집을 운영하던 한환구(55)씨도 "상가 권리금만 7,000만원을 줬는데 이주보상금은 4,400만원에 불과하다"며 "개발도 좋지만 최소한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철협 측은 지역대책위원회를 구성한 1,000곳에서 철거민의 생존권 보장을 이끌어 낸 것을 지난 20년의 최대 성과로 꼽는다. 2006년 서울 광진구 도깨비상가 철거 당시 대체 장사공간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조합ㆍ시공사와 협의해 재개발 계약서에는 없던 거주세입자의 임대아파트 우선 분양권도 여러 차례 얻어냈다.

하지만 출범 당시 10만명에 달했던 회원 수는 20년 만에 5,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집행이 강화된 측면이 크지만 생존권을 보장받은 뒤 본업에 복귀한 회원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이들을 더 쓸쓸하게 만드는 것은 철거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이날 행사 때도 쌀국수를 사 먹으러 천막에 들어오는 시민은 없었다. 염리ㆍ공덕동 철거민 김용택(65)씨는 "우리도 번듯한 사람들이었는데, 사람들의 매몰찬 시선에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는 "철거민 하면 떠오르는 폭력적 이미지 등을 극복하지 못한 게 전철협의 한계"라면서도 "철거민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끔 벼랑 끝으로 내몬 정책입안자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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