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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씨여, 침묵에서 깨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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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씨여, 침묵에서 깨어나십시오

입력
2013.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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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19일, 10년 전 그날을 기억합니까? 이제는 잊힐 만도 한 단단했던 분이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었죠. 그날 당신은 꽤 오랜 날을 지속한 콘서트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그 날자 표를 예매했습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당신의 노래로 위로를 받거나, 아니면 당신과 그 기쁨을 함께하고 싶었지요.

이윽고 어두운 무대에 등장한 당신은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 태극기를 향해 자랑스럽게 경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 당신의 모습에서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이웃을 신뢰하는 가객, 아니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2012년 12월 19일, 많은 이웃들이 침묵했습니다. 저, 그리고 제 주위 수많은 벗들이 입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침묵으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던 분들도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절망의 늪으로 온몸을 던진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으니까요. 저는 골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닦으며 노래를 찾았습니다. 그 길 외에 어떤 구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하소서! 저를, 이 절망의 늪에서, 좌절의 벽에서, 고통의 심연에서 구하소서!

그때 제게 먼 나라에서 태어난 한 곡의 음악이 겸손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파블로 밀라네스의 '욜란다'. 수백 년간 지속된 제국주의자들의 억압을 오히려 밝은 춤곡으로 승화시켜 오던 쿠바 대중음악계에 또 다른 지평을 연 '새로운 음유시 노래 운동'을 주도하고, 실비오 로드리게스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활동한 밀라네스가 조국을 여인에 빗대어 노래한 '욜란다', 그 곡이었습니다.

내가 패배했다고 느낄 때마다

그래서 아침의 태양을 외면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당신이 가르쳐준 기도를 외워봅니다.

그리고 창가에서 당신을 불러봅니다.

욜란다, 욜란다,

영원히 욜란다를…

저는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흐르는 눈물로 목을 적셨습니다. 젊은 시절의 녹음, 지긋한 노년의 녹음, 다른 벗들과의 듀엣, 수많은 청중과 함께하는 감동의 소리.

매일, 그의 노래를 통해 '절망하지 말자. 다시 이웃을 믿자, 아니 믿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적의 노래는 제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5선지에 음표 대신 '₩¥£$'같은 화폐단위가 걸린 K팝은 저의 우울을 비웃으며 빠른 속도로 흘러갈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절망하고 좌절한 채 구석방 한구석에서 모든 매체를 등진 채 침묵과 친구나 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새벽의 암흑 속에서 동트는 빛을 기다려야 할까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 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정태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에서)

아마추어는 자신을 위해 행동하지만, 프로는 남을 위해 행동합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프로만이 가능한 위대한 일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던 당신의 절망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프로입니다. 오늘의 침묵을 깨고 희망의 음률을 잉태해 제 가슴을 채워주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당신의 영원한 벗임을 확신하는 이가…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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